위대한 쇼맨 : 올해 최고 영화 중 하나가 될 듯

일상/HRD이야기|2017. 12. 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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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았습니다. 연달아 연말 술자리를 가져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나중에 보려고 했었는데 그랬다면 정말 후회할 뻔 했습니다. 올해 약 47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감동을 받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올해 47편의 영화 중에 제 인생영화라고 할 수 있을 작품은 몇편되지 않더군요. 2017년에는 [위대한쇼맨], [컨택트], [너의이름은] 이렇게 3편의 영화를 제 인생영화 리스트에 넣어두려 합니다. 여러분도 올해가 가기전에 꼭 한번 [위대한 쇼맨]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 조만간 또 한번 보러갈 계획입니다.

[위대한 쇼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입니다. 바로 P.T 바넘이라는 사람입니다.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속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There's a sucker born every minute.)” 
  

미국 코네티컷주 베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에 무작정 가출을 한 바넘은 잡화점에서 일하면서 어떤 물건에 대해 자신이 한마디를 하는 것이 그 물건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잘 팔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뉴욕으로 이주한 바넘은 대중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쇼맨(showman)'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았다.

1835년 바넘의 최초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조이스 헤스(Joice Heth)를 보자. 바넘은 헤스가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의 간호 노예였으며 161세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80세였지만, 바넘의 선전술이 어찌나 뛰어난지 그녀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얼마 후 사람들의 관심이 줄자 바넘은 스스로 신문사들에 익명의 고발 투고를 한다. 바넘이 대중을 속였다고 비난하면서 헤스는 사실 인조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게 보도되자 다시 관람객이 크게 늘어났다.

바넘의 흥행은 매사가 이런 식이었지만, 대중은 바넘에 의해 속아 넘어가는 것마저 즐겼다. 중요한 건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으며, 바넘의 성공 비결은 바로 그런 일을 잘 하는 탁월한 홍보술이었다. 대중은 바넘의 쇼와 이벤트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가짜냐 진짜냐 하는 논란이 벌어지는 걸 사랑했다.

바넘은 1842년 피지 섬에서 잡혔다는 피지 인어(Fejee Mermaid)를 전시함으로써 세상을 또 한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건 원숭이 미이라와 마른 물고기를 조악하게 붙여서 만든 것이었지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중요할 뿐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걸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바넘은 1843년엔 톰 섬(Tom Thumb, 1838-1883)이라는 난쟁이를 대중에 소개했다. 5살로 25인치(64cm)의 키에 불과한 톰 섬은 대단히 조숙해 영악할 정도로 똑똑했거니와 말도 잘하고 잘 까불고 노래도 하고 유명인 흉내도 냄으로써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다 바넘이 가르친 것이었다. 톰 섬의 인기가 유럽에까지 알려지자 바넘은 그를 데리고 1844-1846년 유럽 투어에 나섰다. 영국 버킹엄궁을 방문해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하자, 이게 또 홍보 효과를 낳아 유럽 각국의 황실에 초청되는 등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바넘은 1850-51년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Jenny Lind, 1820-1887)를 미국에 초청해 전국 순회 장기공연을 벌임으로써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린드는 미국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인물이었지만, 바넘은 린드의 미국 도착 전 엄청난 홍보 공세를 퍼부어 미국인들이 얼굴도 보지 못한 린드에 열광하게 만드는 ‘홍보의 승리’를 거두었다.

린드가 뉴욕에 도착할 때 4만명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2만명은 그녀의 호텔 앞에서 진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린드의 공연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치솟자, 바넘은 표를 경매로 판매하는 묘기를 선보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전 홍보가 가능했을까? 바넘의 천재성도 큰 몫을 했겠지만, 바넘이 직접 봉급을 주면서 관리하던 언론인만 26명에 이르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린드의 공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커스 흥행업자와 소프라노 가수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오늘날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당시엔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이른바 고급문화의 저급문화의 분리는 19세기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 연극과 오페라는 오늘의 기준으로는 고급문화에 속하지만, 영국에서 19세기 이전까지는 일반 대중도 즐기던 ‘대중문화’였다.

OST로 기억하는 위대한 쇼맨

영화는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사랑, 차별, 행복의 의미등의 주제를 다양하게 선보이지만 그것이 복잡하거나 억지로 짜맞춘 전개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뮤지컬 영화의 특징이겠지만 일반대사와 노래간의 어색함이 전혀없었습니다.

<A Million Dreams>

P.T. 바넘과 그가 사랑했던 채러티 바넘의 옥상에서의 춤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속삭이고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 세탁물이 걸린 천들 사이에서 아주 아름답게 비춰집니다. 제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A Million Dreams>라는 OST와 함께 보여지는 영상미는 아주 사랑스러웠습니다.

<The other side>

P.T. 바넘이 필립 칼라일에게 동업할 것을 제안하는 장면입니다. 필립 칼라일은 극중에서 고위층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P.T 바넘이 이를 활용해 무대의 폭을 넗히려 했던 겁니다. 칼라일 역식 그동안 고위층의 답답하고 자유롭지 않은 삶을 지루해 하고 있었기 때문에 P.T 바넘의 제안에 수긍하게 됩니다. The other side는 바로 서로를 설득하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이 장면의 OST로 아주 흥미롭게 표현됩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니 [라푼젤]이 술집에서 불렀던 OST도 떠오르네요.

<This is me>

P.T 바넘은 이 세상에서 보고 힘든 기괴하고 신기한 것들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먼저 오픈합니다. 하지만 무형의 물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됩니다. 영화상에서 아주 귀여운 두 딸이 "아빠 움직이지 못하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것들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라는 말에 영감을 받아 은행에서 우연히 본 25인치(64cm)의 톰섬을 시작으로 세상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P.T 바넘의 공연장으로 이끕니다. <This is me>라는 OST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자신임을 강렬한 노래와 춤으로 어필합니다.

<Never Enough>

 P.T 바넘은 1850-51년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Jenny Lind, 1820-1887)를 미국에 초청해 전국 순회 장기공연을 벌임니다. 영화상에서 처음으로 제니 린드의 노래 <Never Enough>가 불려지는데 그렇게 빨려들어가듯 집중해본적이 없을 정도록 엄청난 음색과 노래 가사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Rewrite the stars>

위대한 쇼맨 영화 중 가장 멋졌던 장면과 OST였습니다. 세상에서 차별적 시선을 받으며 자라온 흑인 앤 휠러와 고위층 자제인 칼라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서로의 사랑과 감정을 표현하는 이 장면은 아마 보시는 모든 분들의 감정을 이입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write the stars>라는 OST도 듣다보면 많이 들어봤던 곡이라는 생각도 드실 것 같습니다.

2017년이 이제 불과 5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에게 [위대한 쇼맨]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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