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함께-인과연 (2017)

일상/영화리뷰|2018. 8. 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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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루키마인드입니다.

계속해서 드리는 변명이지만 출장을 다녀온 뒤로 블로그 포스팅을 올리는 규칙적인 행동이 조금 깨져버린 느낌입니다. 그리고 몸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구요. 확실히 규칙적인 것에 익숙해 있다 다시 원점으로 회복하는게 쉽지만은 않은 거 같습니다.

오늘 공유드릴 영화는 [신과함께-인과연] 입니다.

주말에 본 영화인데 이제서야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작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과연은 신과함께-죄와벌편과 함께 찍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신과함께-죄와 벌>은 최종 누적 관객수 1,440만 명을 돌파,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해외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한국을 넘어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전역에 배급되었고 대만 역대 아시아 영화 흥행 1위, 홍콩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는 물론 북미, 호주, 베트남 등 주요 국가에서도 흥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 것과 같이 신과함께 영화는 한국 최초 1, 2부 동시 제작을 한 영화입니다. 김용화 감독은 유기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이어지는 1, 2부의 이야기와 영화의 배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동시 제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습니다. 1부에서 이야기를 관통하는 세계관의 초석을 다지고, 캐릭터들의 특성을 잘 직조해야만 메시지의 귀결이 이뤄지는 2부를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동시 제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신과함께-인과 연>에서는 1부에서 쌓아놓은 세계관과 저승 삼차사들의 관계를 주축으로 1부에서 알게 모르게 담겨있던 수많은 이야기 조각들이 2부에 이르러서야 퍼즐을 맞추듯 하나로 완성되어 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神이기 전 인간이었던 그들, 저승 삼차사의 숨겨진 비밀


 <신과함께-인과 연>에서는 1부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저승 삼차사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1부에서도 밝혔듯이 해원맥과 덕춘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채 천 년 동안 저승 차사를 하고 있었지만 우연히 성주신이 자신들을 저승으로 데려갔던 저승 차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들이 신이 되기 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영화가 전개될수록 “신이기 전,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들이 왜 저승 차사가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전편에서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신과함께 - 인과연>에서 그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왜 저승 차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과정을 기반으로 영화의 줄거리를 풀어갑니다.


# 인지상정, 그럴 만했다


<신과 함께1>은 게임의 레벨업을 위해 깨야할 단계처럼 지옥들이 차례로 소개됐다. 귀인 김자홍(차태현 분)이 현란한 볼 거리를 선사하는 지옥을 통과하며 드러나는 현실의 이야기들이 감동도 주고 생각할 거리도 주었다. <신과 함께2>는 전편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와 볼 거리, 감동, 현실 비판을 적절하게 혼합한다. 그러나 반복으로 인한 지겨움을 불러 일으킬 것이 뻔한 전편의 전투적이었던 지옥 통과 과정은 볼거리를 남기되 조금 약화시킨다. 빈 자리는 좀더 복잡해진 이야기의 구조가 차지한다.

<신과 함께2>에서는 성주신(마동석 분)이 담담하는 현실의 이야기와 삼 차사의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할아버지 허춘삼(남일우 분)과 손자 현동(정지훈 분)의 안타까운 상황을 바탕으로 덕춘(김향기 분)과 해원맥(주지훈 분)의 과거가 성주신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귀인 김수홍(김동욱 분)의 총기 사건과 판박이인 리더 강림(하정우 분) 차사의 과거는 지옥을 통과하며 드러난다. 전편에서 현실과 지옥을 오가는 이야기에 강림 차사의 과거가 조미료처럼 뿌려졌다면, 본편에선 현실과 지옥을 오가는 이야기에 세 차사의 과거가 주재료로 묵직하게 얹어진다. 갈래갈래 뻗어나갔던 세 차사의 과거 이야기는 잘잘못을 섣불리 평가하거나 단정할 수 없는 삼각형으로 연결된다.

과거의 기억을 가진 강림과 과거를 잊은 해원맥과 덕춘. 기억이 있는 자는 그 기억으로 괴롭고, 기억이 없는 자는 그 상실로 답답하다. 본분에 충실한 세 차사의 현재는 물 흐르듯 평온해 보이지만, 과거는 태풍으로 휘몰아칠 눈을 품고 있다. 그 태풍을 상상한다면 이들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차사들 각각의 사연에는 '인지상정'이 존재한다. 질투에 눈 멀었던 자도, 본분을 망각했던 자도, 보복을 한 자도, 그들이 처했던 상황을 살피면 그 '어쩔 수 없음'에 측은해진다. 보는 이 역시도 그들처럼 한계를 가진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 감춰진 부성

 


마치 이들을, 이들 중의 누군가를 비호하듯 성주신은 나쁜 사람은 없다고, 나쁜 상황이 있다고 말한다. 성주신 역시 좋은 마음으로 한 일들의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아 전전긍긍한다. 성주신은 철거 보상금을 주식, 펀드에 투자해 날려 버렸다. 도박과 사행성을 품은 금융 한쪽의 어두운 늪은 비트코인으로 이어지며 숱한 이들을 빨아들였다. 지옥과도 같은 이 시대의 슬프고도 어리석은 자화상이다.

그러나 나쁜 상황만을 운운하며 차사나 성주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영화는 세 차사를 둘러싼 여러 과거 정황들을 고조된 감정과 낭만적인 정경들을 교차하며 드러낸다. 성주신의 잘못은 웃음을 가미하여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긴장과 이완의 시간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은 인지상정과 측은지심의 안타까움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이때, 억울한 것인지 슬픈 것인지를 묻는 근엄한 목소리가 날아든다.

<신과 함께1>에서는 어머니의 눈물로 대변되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며 모든 것을 감싸 안으려는 모성애가 강조된다. 그러나 <신과 함께2>에서는 그러한 잘못을 준엄하게 따지는 부성애가 강조된다. 영화 속의 부성은 자못 엄격하고 근엄하다. 과오를 깨우치게 하려는 준엄한 부성은 합리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 부성은 그 감춰짐으로 인해 안타깝다. 정체를 감춘 어떤 이처럼 부성은 그렇게 숨겨진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사랑받지 못한다 여기는 자식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자식을 애정함에도 그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주신과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군율을 어기는 하얀삵의 모습도 여기에 보태진다. <신과 함께2>는 그렇게 강인함 속에 감춰진 안타까운 부성을 그려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특정 차사에 대한 염라의 편애가 슬슬 불편하던 차였다. 때문에 영화가 이 불편을 어떻게 해결할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 불편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폭로(?)로 해결된다. 뜻밖의 폭로는 이야기와 그리 겉돌지 않으며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까지 생산해낸다.

# 용서를 통한 구원


<신과 함께2>는 전편에 이어 다시한번 '용서'를 화두로 던진다. <신과 함께1>은 잘못을 한 자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상대에게 용서 받는다면 단죄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통해 용서의 상호작용이 불러일으키는 구원을 그렸다. 어머니를 죽이려던 천인공노할 죄악이었지만, 바다같은 모성은 눈물로 그것을 품었다. <신과 함께2>에서는 용서를 빌 수조차 없는 자의 처연한 슬픔이 그려진다. 그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용서를 빌 수조차 없는 자의 회한의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대사나 용서를 빌 수조차 없다며 우는 가해자 등 영화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서사를 진행시킨다. 잘못을 지적하는 엄격한 아버지가 없었다면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의 진행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라고 했던가. 마치 가해자의 상황을 대변하며 옹호하는 듯한 이야기들은 역설적으로, 우리들이 얼마나 자애로울 수 있는 지를 말해준다.

상호작용하는 용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누군가는 상황을 고려하고 상대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를 하기 마련이다. 상대가 반성을 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면 외면할 누군가는 그리 많지 않다. 나쁜 상황과 참회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는 용서를 하는 그 누군가일 수 있다.

용서는 용서를 구하는 자를 품에 안는 자애로운 모성적 측면과 반성과 각성의 수반을 요구하는 부성적 측면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신과 함께>는 용서의 이러한 속성을 1, 2편에 연달아 담아낸다. 2편에서는 용서해줄 누군가가 부재한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기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용서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용서해줄 누군가가 없지만 참회의 눈물과 그에 따른 행동은 구한 자에게 그것을 쥐어준다.

용서는 비는 자와 용서를 하는 자까지도 잘못과 그것이 만들어낸 상처의 고통에서 구원해내는 힘이 있다. 때문에 용서를 빌 수조차 없는 자의 눈물은 용서를 하지 못한 자의 눈물일 수도 있다. 나와 내 곁의 누군가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가련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용서해야 하거나,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라면, 좀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인'으로 태어나 맺어가는 '연'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할 이유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동병상련의 관계들이다.

금기를 깨고 동정심으로 인간의 일에 끼여든 성주신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 신은 지켜보는 존재이다. 신은 그저 함께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서로를 연의 사슬에 옭아매며 부딪히고 깨지며 잘못하는 것이 사람이듯, 용서하고 품는 것도 사람이다. 나아가 우리는 '용서를 빌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맥락까지 헤아릴 수 있는, 충분히 관대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다

# 전체 관람평

전편에 이어 이번 <신과함께 - 인과연>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전작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재미였다면 이번작품에서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대한 해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작인 웹툰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시간이 날때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특별출연"이라던 이정재가 특별출연 정도의 역할이 아니였다는 점과  강림(하정우)의 아버지가 바로 "염라대왕"이였다는 부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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