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일상/도서리뷰|2018. 7. 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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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루키마인드입니다.

오늘 포스팅할 책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입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와 같이 요즘 다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많은 작가들이 양성되고 있는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어찌되었던간에 누군가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고 그것이 공감이 되어 작가로서 이 세상에 등장한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작가로 양성된 분들이 꽤 많은데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제가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분을 이야기 하자면 대표적인 분으로 "장수한" 작가 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퇴사의 추억"이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펼치시고 현재는 실제로 "퇴사학교"라는 사업체를 세우고 활동중이신 분이니 말입니다.

여튼 저는 오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라는 책에 대해 제 생각을 정리하려 합니다.

우연하게도 서점에 들려 "나는 아직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라는 청울림님의 자기계발서 읽고 나서 제목이 재미있어 보여 선택한 책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책 내용도 공감이 많이 되기 때문에 정말 순식간에 한권을 읽어 내려간것 같습니다. 헌데 다 읽고 나니 청울림님의 책과 함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은 것 같아 포스팅을 남깁니다.

 ㅣ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메시지

이제라도 남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

사람은 저마다의 인생 스케줄과 속도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에 걸맞은 인생 매뉴얼이라는 게 정해진 듯하다. 매뉴얼에서 벗어나면 득달같이 질문 세례가 쏟아지고, 독신주의자인 저자는 더욱 이런 질문 세례의 타깃이 되었다. 모두가 그에게 인생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설득력 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사실 저자는 인생 매뉴얼에 의문과 반항을 품고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항상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그들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려고 애썼다. 대입 4수와 3년간 득도의 시간, 회사원과 일러스트레이터의 투잡 생활까지 그동안의 인생 대부분은 인생 매뉴얼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생 매뉴얼의 문턱에서 마주한 것은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갖추려 애쓰는 동안 자신만의 가치나 방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인생 매뉴얼에서 멀어진 김에 자신만의 길을 찾기로 했고, 극약 처방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한 저자의 실험에 대한 담담하고 솔직하고 진지한 고민을 만나볼 수 있다.

책속 저자의 메시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헌데 전 궁금합니다. 대입 4수와 3년간의 득도를 통해 얻은 "열심히 살지 않기"라는 삶의 태도를 통해 저자는 "성공"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출판이라는 성공을 이야기 합니다). 누군가에게나 맞는 인생 매뉴얼을 저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실험이 과연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실험인지는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ㅣ 작가 하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었다.
‘열심히 사는데 내 삶은 왜 이 모양인가.’
억울한 마음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됐지만 그림 의뢰도 거의 없고 결정적으로 그림 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놀고먹는 게 주된 일이 됐다. 이제야 적성에 맞는 일을 찾게 되어 더욱더 게으르게 살다 보니 열심히 살지 않는 데 도가 텄다.
특기로는 들어오는 일 거절하기, 모아놓은 돈 까먹기, 한낮에 맥주 마시기 등이 있다. 다수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쓰고 그린 그림책도 한 권 있지만 굳이 밝히지 않겠다.

제가 신경에 거슬리는게 이부분입니다. 투잡까지 뛰시면서 "열심히 사는데 내삶은 왜 이모양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던 작가로서의 아쉬움과 나름대로 인생의 경험을 통해 성찰한 내용을 책으로 쓰셨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글하나 제대로 쓰는데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습니다(저를 포함해서, 전 하완님 처럼 글을 잘쓰고 싶습니다). 주된 메세지 자체가 열심히 살지 않는데에 있는데 제가 보았을 때는 매우 열심히 사는것 처럼 보입니다. 평일 낮에 맥주를 먹기위해선 적어도 1만원 이상의 돈이 들고 책을 쓰는 것 또한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과 책까지 출판하신 분이 "열심히 살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은 납득하기 조금은 어렵습니다.

ㅣ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책의 의도...

노력이 배신하고, 인생에 사사건건 고나리질하는 현실
열심히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남자의 인생을 건 본격 야매 득도 에세이

우리는 태어난 이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직장에 가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비소로 진정한 어른이 된다. 보험과 저축, 적금, 집, 차 등도 이 나이가 되면 이 정도는 챙겨야 한다. 과연 이런 인생 매뉴얼은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이 매뉴얼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한 인생인 걸까? 매뉴얼에 가까워지도록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도? 그럼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원망과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참으로 오랜 시간 세상을 원망하고 미래를 고민했다. 그러다 불현듯 깨달음처럼 의문이 찾아왔다. '나는 어디를 향해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걸까?'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알 수 없어 멈춰 섰다.

이 길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름 굴곡진 인생을 열심히도 살아 냈다. 대입 4수와 3년간 득도의 시간, 회사원과 일러스트레이터의 투잡 생활까지. 하지만 그동안의 인생 대부분은 인생 매뉴얼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것이었다. 이제라도' 남'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극약 처방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이야말로 인생이라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찾아야 할 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미래를 위한 용기이고 예의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건 그의 실험은 시작됐다.

이 책에는 그의 실험에 대한 담담하고 솔직하고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이야기에 그림을 더해 웃픈 현실을 위트 있게 보여준다. 특히 자신을 시종일관 팬티 차림의 시원한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고민을 훌훌 던져버리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찾겠다는 득도의 자세를 보여준다. 진지함과 웃음의 조화는 독자로 하여금 현실을 보다 가볍게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은 정말 가벼운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둥둥!”이라고 했던 그의 다짐처럼 우리도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가보는 건 어떨까.

물론 저자의 의도와 같이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둥둥!”처럼 살아가고 싶은게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것을 도전한 작가의 용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헌데 말입니다. 인생이라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깨닫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삶의 방향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주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합니다. 

 ㅣ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노력의 시대는 갔다

노력은 항상 정당한 결과를 가져올까? 아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일은 사실 극히 드물 다. 어째 이상하게 항상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잘 생각해보면 노력이 항상 배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노력에 턱 없이 부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노력에 과분한 결과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만 속상해하고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두어 노력의 배신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게 된다.

그렇다면 결과는 모두 하늘의 뜻이니 노력하지 말라는 이야기일까?

저자는 노력의 무상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치 열심히 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파도가 몰려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는” 것과 같다고. 인생의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 것이라고 말이다.

분명 인생에는 우리의 영역과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인생을 노력 대비의 효과로만 바라보며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생을 가성비가 아닌 진정성의 의미에서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사실 그게 어려워서 힘든 것이다.

특히나 노력과 열정이 미덕이라 여기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괴테가 그러지 않았는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노력을 어디에 기울이고 있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살펴야 할 때다.

맞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저자는 분명히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헌데 방향을 잡기위해서는 중요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가치관 목표 등등 말입니다. 남들이 다 하는 곳에 대한 노력이나 열정 대신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대로 살아가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만을 보았을 때 그러한 방향성을 찾기 위한 가이드는 없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이미 그 방향성을 찾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책을 읽은 독자의 경우 아무런 생각없이 텍스트로 전해지는 공감으로만 이 책을 이해한다면 더 힘든 고난이 생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ㅣ 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나를 나로 채울 때

사람은 저마다의 인생 스케줄과 속도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에 걸맞은 인생 매뉴얼이라는 게 정해진 듯하다. 그래서 매뉴얼에서 벗어나면 득달같이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도대체 왜 결혼을 안 해?”, “대출 받아서 아파트 사야지.”, “차는 결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돼야 할걸.”, “연금보험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등등.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냐?’라는 식이다.

독신주의자인 저자는 더욱 이런 질문 세례의 타깃이 되었다. 모두가 그에게 인생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설득력 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사실 그는 인생 매뉴얼에 의문과 반항을 품고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항상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그들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수많은 인생 매뉴얼의 문턱에서 마주한 것은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갖추려 애쓰는 동안 자신만의 가치나 방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어차피 인생 매뉴얼에서 멀어진 김에 자신만의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
내 속은 얼마나 나로 채워져 있을까. 이것들은 정말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것들일까. 나는 이 길에 얼마나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댈 수 있을까. 만약 인생 매뉴얼에서 뒤처진 것 같아 초조하다면 그건 아마 우리 안이 타인의 시선이나 강요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안을 우리의 목소리로, 질문으로 가득 채우자. 그럴 수만 있다면 느려도 뒤처져도 달라도 괜찮다.

저는 교육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좋은 교육 컨텐츠를 만들더라도 왜 사람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느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하완 작자님이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 스스로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인이 진정으로 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교육이 없더라도 변화 포인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길을 알려주어도 그것을 따라하지 않습니다. 본인만의 프레임에 갖혀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이 의도하시는 우리의 목소리로, 질문으로 가득채우자라는 메세지는 너무 공감이 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그저 메세지로 전달되는 텍스트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먹고사는 게 뭐라고 꿈도 밥 먹여준다, 밥만……

우리는 대부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일로 먹고사는 것은 기본이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하고, 자아실현도 하고, 재미있으면서 너무 힘들지 않고, 여가 시간이 보장되고, 존경까지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먹고사는 것만 충족되면 재미니 자아실현 같은 거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저자마저 그림이 일이 되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게 됐다고 하니 일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일이라는 게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해서 돈을 벌려면 양보해야 할 것이 의외로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여가 시간 등등.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적당히 하고 적당히 노는 삶은 어떠할까.

그런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저자는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벌었던 것처럼 그런 삶 또한 우리의 돈으로 적당히 노는 시간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불로소득이 있는 자본가계급이 아니라면 말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다. 모든 걸 충족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그의 먹고사니즘을 건 실험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 자신만의 일의 가치와 기준이 될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꿈을 실현해야만, 일에 열정이 있어야만 그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꿈을 이루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꿈이라고 하는 것도 누군가의 기대속에 그려진 이미지이자 환상일 뿐입니다.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책을 읽다보니 작가님도 궁극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갈등을 겪으시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가이드가 잘못 된게 아닐까요? 세상이 사회가 규명한 열정과 노력대신 본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방법론적인 방안을 설명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저는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불안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ㅣ 하마터면 불행할 뻔했다 현명한 포기가 필요해

열정이 미덕인 시대다. 불굴의 의지, 도전의 신화는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존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열정과 끈기는 그 자체만으로 고결하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인생과 적절하게 타협하고 포기하는 것을 비굴하다고 생각할까.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콩코드 오류에 빠져 있을 수 없다.

본전 생각이 절실해도 손절매가 필요한 것이다. 그건 비굴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도전의 실패를 스스로 납득하고 인정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포기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에는 실패의 인정을 유예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
---「내 열정은 누굴 위해 쓰고 있는 걸까」중에서

그동안 남들이 가리키는 것에 큰 의문과 반항을 품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그들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려고 애써왔다. 잘 안 됐지만 말이다. 사실 가능하면 ‘인생 매뉴얼’에 맞춰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욕망하며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이 가리켰던 것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마이 웨이」중에서

현명한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현명한 포기는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체념이나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의지박약과는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아직 더 가볼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그만두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 는 것이 이익이니까.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아이 캔 두 잇」중에서

가끔은 인생에 묻고 싶어진다. 왜 이렇게 끝도 없이 문제들을 던져주냐고. 풀어도 풀어도 끝도 없고, 답도 없다. 이쯤 되니 인생이 하나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정답 없는 수수께끼 같은 농담 말이다. 농담을 걸어온다면 농담으로 받아쳐주자. 심각할 필요 없다. 매번 진지할 필요도 없다. 답을 찾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농담을 못 받아치고 심각하게 대답하는 것처럼 센스 없게 살고 싶지 않다.

내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현실은 궁상맞지만 과거처럼 비관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 이건 ‘답’이 아니라 ‘리액션’이 중요한 시험이니까. 내 리액션은 괜찮은 걸까?
---「인생은 수수께끼」중에서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건 일을 안 하거나 돈을 벌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은 노는 게 좋아서 노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난 일하고 돈을 벌 것이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한다.
단, ‘열심히’의 논리 때문에 내 시간과 열정을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직 위로는 필요 없습니다」중에서

우리 사회는 정답이 정해져 있다. 그 길로 안 가면 손가락질 받는다.
애초에 꿈을 꾸지 못하게 한 것도, 꿈을 꾸며 조금만 다른 길로 가려 하면 온갖 태클을 거는 것도 어른들이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이런 분위기에서 꿈을 꾸라니요? 꿈꾸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꿈이 없냐니요?
그런 이유로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대한민국에서 꿈을 꾼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꿈을 가지라는 것이 ‘도전 정신’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스펙’을 강요하는 건 아닐지 염려스럽다. 그래서 함부로 그 말을 못 하겠다.
---「꿈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중에서

내가 원래 좀 느려.
나는 예전부터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버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숨기지 않고 말하고 다녔다. 신기한 건 주변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거나 한심해하지 않고 내 느린 속도를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나 역시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보다는 천천히 간다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단골 막걸리 집에서 주인장의 느린 손을 탓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던 것처럼…….
---「느려도 괜찮아」중에서

나는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몇 천 번이라도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 생각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내 인생을 사랑해준단 말인가.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면 뭔가 덜 좋은 걸 얻은 것 같지만 ‘꿩 대신 치킨’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치킨은 사랑이니까. 당장이라도 맥주 캔을 따고 싶을 만큼 흥분된다. 지금 우리의 삶은 닭이 아니라 치킨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됐습니다만」중에서

 ㅣ 내가 느낀 책 리뷰는 ...

전체적으로 책속의 내용은 공감이 가득했습니다. 제 이야기 같았고 주변 지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 였습니다. 헌데 이런 종류의 책은 그동안에도 무수히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이미 세상에는 좋은 메세지를 가진 책들이 너무 많이 있고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제시하는 책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것을 올바로 소화시킬 만한 능력이 되는 독자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메세지를 올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사색"이 필요한데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좋은 책입니다. 다만 단순히 텍스트의 공감만으로 이 책을 이해한다면 더 깊은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작가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을 독자들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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