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일상/도서리뷰|2018. 7. 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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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루키마인드입니다.

계속해서 찜통같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어 집에서 보내는 시간 보다는 에어컨이 빵빵한 집 주변 쇼핑몰에 거의 출근하다 싶히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분들이 많은지 확실히 여타 다른 주말보다 사람들도 많습니다. 쇼핑몰 밀집 지역이다 보니 다양한 쇼핑몰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가 이용하는 쇼핑몰은 각각의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식당, 영화관, 서점 등등 말이죠. 이 중에서 저는 서점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편인데 "북캉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서점에도 사람들이 많네요.

그동안 저는 주로 부동산관련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었습니다. 왠만한 부동산 책들은 이제 거의 다 본 것 같아 구체적인 실행방법만 적용하면 될 정도입니다. (다만 실행을 하는데 있어 제약이 많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부동산 책 이외에 다양한 책들을 읽자. 책을 읽는 재미를 가지기 위해 우선적으로 집어든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에세이"입니다.

에세이란 통상 일기·편지·감상문·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양식을 포괄하며, 모든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있는 것으로 읽기에 부담감이 없습니다. 그리고 평상시 제가 생각하고 고민했던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블로그를 활용해 인기있는 연재 포스팅이 책으로 출판되는 경우도 많은데 대부분 "에세이" 형식의 책들이라 서점에서도 중요한 매대에 최신 책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책은 김수현 작가의(본인은 작가라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입니다. 저자 김수현은 일러스트 에세이 《100% 스무 살》 《안녕, 스무 살》 《180》를 출간한 엄연한 작가라고 저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에세이는 읽고 공감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많은 공감되는 글들을 그저 텍스트로 이해하는 독자들이 많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분명 저자가 의도하는 수많은 공감 글들은 저자가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찾은 길일테니 말입니다. 그런 시행착오에 대한 고민없이 결과적으로 표현된 텍스트만을 가지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수많은 좋은 "에세이"를 읽더라고 계속해서 공감만 할 뿐 자신의 안식은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오지랖"적인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의 도구가 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


 ㅣ 내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릴 때, 가장 괴로운 건 그때 겪은 고통이 아니라 고문관에개 잘 보이려 했던 자신의 비굴함이라 했다. 물론 그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의 자존감에 치명상을 끼치는 건, 부당한 대우 자체보다 부당한 대우에 굴복한 자기 자신인 거다. 저열한 인간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에겐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

저는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편입니다.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인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상사와의 관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분명 직장에서의 상사는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데 저는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며 업무를 처리하곤 합니다. (물론 따지기도 많이 따지지만 올바른 말을 면전에다 직접하지는 않기에,..) 분명 비정상적 대우나 지시에 대해서는 저항을 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은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 고민은 어디까지가 친절로서 응대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수위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고 있습니다. 

 비참해지려 애쓰지 않을 것

미디어는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훔쳐볼 수 있게 하고, 옛날 같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이들의 완벽해 보이는 삶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과연 그 호기심은 무료일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법>이란 책에서는 타인의 사람을 훔쳐보며 내 삶과 비교하는 것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이야기 했다. 우리 역시 약간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구경하도 그 대가로 비참함을 지불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충족된 호기심으론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제 인생을 거꾸로 바라보면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제 자신이 부족하고 끝없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갈망하는 삶을 살다보니 인생의 목적도 없이 기운이 빠지고 힘들었던 삶이였습니다. 요근래에는 나름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찾아 예전과 같은 비교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완전한 자존감의 독립은 이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적어도 남들과 물질적인 비교, 보여주는 삶에서의 비교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보정된 모습으로 상대방을 대하지도 않습니다. 커트 코베인의 말처럼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느니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미움받겠습니다.



ㅣ 나다운 삶을 찾을 것

심리학자 제임스 마샤는 자아정체성의 성취정도에 따라 정체성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 4가지 유형은 성취, 탐색, 폐쇄, 혼미 정체성인데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다수가 낮은 정체성 지위인 폐쇄지위(74.4%)에 놓여있었다. 폐쇄지위란 기존의 사회 가치 체계를 그대로 순응하고 전념한 유형인데, 이론에 따르면 이 지위가 낮은 정체성에 있는 이유는 위기의 부재에 있다. 목표, 가치, 신념에 대하여 자문하며 투쟁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에 행복해지는 사람인지 나는 남과 어떻게 다른지 [자기감각]을 찾자. 물론 많은 양의 지성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의존심을 버린다는 게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민과 위기의 순간을 지났을 때, 비로소 스스로가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나다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에세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이야기 하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존중으로 이루기 위해서 저자는 분명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시행착오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책만 읽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고 공감이 되었다면 스스로가 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야기 하는 "노오력", "열정"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스스로 깨달아야만 스스로가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나다운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ㅣ 세상의 정답에 굴복하지 않을 것

영구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는 한국이 교육, 명예, 외모, 직업적 성취에서 스스로를 불가능한 기준에 획일적으로 맞추도록 너무 큰 압박을 가하는 나라라 이야기 하며,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을 불가능한 나라( The impossible country)라 평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는 과연 가능한(possible) 존재인가. 모두가 날씬할 수 없고, 모두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격일 수 없고, 모두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갈 수는 없다.

만약 사회가, 세상이 당신에게 어떤 정답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합당하지 않은 정답에 채점되어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그 정답들에 주눅 들어 스스로의 가치를 절하해서는 안 된다. 좋은 학생에는 여러 정의가 있고 잘 사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답을 가질 권리가 있다. 우리는 오답이 아닌, 각기 다른 답이다.

세상의 정답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제대로된 질문을 하기 위해선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세상이 어떤 방향을 강요하는데 그 강요가 문제가 되는 사항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또다시 사회에서 세상에서 이야기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반문합니다. 저는 분명히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지식"을 쌓아서 세상에서 이야기 하는 정답을 이야기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답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ㅣ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갈 것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교집합을 찾자. 물론 쉽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그 정도의 관심과 노력조차 기울일 생각이 없다면, 타인은 커녕 스스로의 존중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일에 가치를 두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부딪혀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접해보지 않으면 그것이 나에게 맞는 옷인지 아닌지 구분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절대로". 다만 본인을 알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본인을 찾기위해 공부하는 것조차 "열심히"와 "열정"의 프레임에 가둬 버리는 것이 세상이, 사회가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굴복시키는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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