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회계 : 인간은 생각보다 비상식적이다.
출퇴근 거리가 짧아 매일 듣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할때난 꽤 장시간을 이동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에잡히는 경제를 청취하곤 한다. 어쩔때는 아무 생각없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주제가 나올 때에는 집중해서 듣고 그에 대한 나에 생각을 정리해보곤 했다. 다시듣기를 하는 중이라 이미 좀 시간이 지난 방송이였지만 행동경제학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주제가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는 돈을 어떻게 취급하고 또 사용할까? 간단한 질문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다양하며 또 복잡하다. 그 중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이론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이 이론은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한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은 다 같은 돈이 아니라 제목이 존재하며 각 제목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취급 받는다는 것이다.
1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니다
돈은 다 같은 돈이 아니라 제목이 존재하며 각 제목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취급 받는다.
그리고 이는 행동경제학의 대부로 알려진 Richard Thaler가 인간의 판단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주제적 프레이밍(topical framing)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Thaler에 의하면 사람들은 어차피 합치면 다 같은 돈이라도 그 돈을 심리적 목적에 맞게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상황 A. “10만원이 지갑에 있었는데 영화관에 갔다. 영화표는 1만원이다. 그런데 오는 길에 1만원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영화를 보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도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 1만원 잃어버려 기분은 좀 상하지만 어쨌든 9만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상황은 어떤가?
- 상황 B. “10만원이 있었는데 오후에 볼 영화표를 1만원 주고 아침에 미리 사두었다. 따라서 지갑에는 9만원과 영화표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관에 도착해보니 영화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영화표는 재발행되지 않는다. 그래도 영화를 보시겠습니까?”
재미있게도 상황 B에서는 다시 1만원 내고 영화표를 사서 보겠다는 사람의 수가 상황 A에서 그래도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실험이나 상황에서 사람들은 B의 경우에 더 속상해 한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왜냐하면 두 상황 모두에서 그 사람은 1만원의 손실을 입은 것이고 여전히 지갑에 9만원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 행동, 일 등 그것이 무엇이든 주제별로 묶고 다른 주제면 다르게 취급한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 Thaler에 의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황 A의 사람은 지갑에 있는 돈에 대한 마음의 계좌(account)가 하나다. 즉 10 만 원짜리 계좌 하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1만원이 사라졌으니 10%의 손실이다.
그런데 B 상황 하에 있는 사람은 마음의 계좌가 하나가 아닌 두 개다. 하나는 9만원짜리 현금 계좌이고 다른 하나는 1만원짜리 영화(를 위한) 계좌이다. 그리고 그 중 두 번째 계좌에서 100%의 손실이 일어난 것이다.
10%와 100%의 손실 어느 것이 더 가슴 아프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그래서 우습게도 사람들은 상황 B에서 더 속상하며 다시금 그 100%를 메워야 하는 소비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현대 경제학과 심리학이 만나 인간의 판단과 결정을 연구하는 중요한 학문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른바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론인 심성 회계학(mental accounting)의 근본 가정 중 하나이다. 즉, 사람들은 돈, 행동, 일 등 그것이 무엇이든 주제별로 묶고 다른 주제면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해? 말이 되는 소리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들 중에 하나이다. 나 같은 경우도 10만원에서 1만원은 가슴은 아프지만 크게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표로 돈이 전이되면서 9만원의 현금과 1만원의 영화표 즉, 현금과 영화표라는 두개의 프레임이 생겨버린 것이고 이중에서 영화표를 잃어 버린다는 건 100% 손실을 보는 행위이기 때문에 재 구입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어리석고 웃긴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행동 중에 하나이다.
2 하우스 머니 효과?
하우스 머니(house money) 효과라는 것도 있다. 여기서의 하우스란 집이 아니고 도박장을 의미한다.
- 남자 A가 카지노에서 25센트 하나를 슬롯머신에 넣었다. 그런데 100불을 땄다. 이 결과가 남자 A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남자 B가 이제 막 카지노에 도착했다. 그런데 회사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달 업무 수행 실적에 대한 보너스로 100불이 오늘 급여 계좌로 송금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남자 B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반적으로 남자 A가 도박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도박장(하우스)의 돈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게임을 하는 반면, 남자 B는 자신의 돈으로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박에 돈을 덜 쓴다는 것이다.
하우스를 예시로 한 것이라 남자 A가 돈을 더 많이 쓸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남자 B 또한 다른 돈보다는 지출을 많이할 것이다. 우선 A의 남자는 25센트에서 100불을 땃다. 그럼 상식적으로 나에게 100불이 생긴 것이고 이는 현금이기 때문에 내 돈이다. 허나 심리적으로 자신은 작은 금액으로 100불이라는 금액이 꽁짜로 생긴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100불을 다 하우스에서 잃더라도 자기자신은 돈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사이버 머니 정도로 생각하고 게임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100불을 따고 돌아 섰다면 250원 정도에서 10만원이 넘는 금액을 벌어 저녁을 즐겁게 보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남자 B의 경우도 하우스의 사례에 대입해서 그렇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월급보다 허술하게 관리하거나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설날과 추석에 나오는 상여금의 경우는 특별한 목적성 자금에 저금하고 투자하는 것보다는 여행비나 부모님 용돈등으로 사용한다. 즉, 실제 내가 고생해서 얻은 값진 월급이라는 생각보다는 좀 더 손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크다.
3 제목을 붙이는 순간 나의 행동이 달라진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돈에 이름 즉, 제목을 붙인다. 그리고 그 제목은 대부분 그 돈의 사용처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용처가 달라지면 사람들은 소비를 꺼린다는 것이다.
지갑 속에 10만원을 넣어두면 하루 이틀 지난 뒤 어느새 다 없어지고 말지만, 그 10만원 중 3만원을 비상금이라고 이름 붙이고 난 뒤 한두 번 접어 지갑의 다른 칸에 넣어두면 좀처럼 꺼내 쓰지 않게 된다.
결국의 합은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른 양상의 생각과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일까? 사실 돈에만 제목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제 자체가 의미 혹은 주제를 시간이나 행동 같은 연속적인 것들에 부여하고 그 주제에 따라 불연속적인 것으로 끊어 내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속적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인 세상을 디지털적으로(즉, 주제별로) 분리해 내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중요하게 혹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측면 각각을 뒤집어서 고려해볼 필요가 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 생활 속의 심리학 > 심성회계 > 돈에도 제목이 있다
재테크 고수들이 청중들에게 추천하는 것 중에 하나가 통장에 이름 붙이기 혹은 돈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즉, 매월 받는 급여를 사용처에 맞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식비, 통신비, 생활비 등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매달 일정한 금액들이 각각의 이름에 사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매월 일정한 이름별 지출 금액 외 남는 금액을 저축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즉, 급여의 프레임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네이버 가계부나 기타 가계부어플을 사용하면 1~2개월 만에 자신의 소비 패턴을 인지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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