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몰랐던 한국인 공자·쑨원… 반한감정이 낳은 오해

일상/글로벌이야기|2018. 8. 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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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 친구들은 대개 친절했고 우호적이었으며 마음이 따뜻했다. 이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또 한 차례 의문을 품게된 일이 생겼다.(☞[이재은의 그 나라, 대만 그리고 반한감정 ①] 참고) 대만인을 남자친구로 둔 홍콩계 캐나다인 친구와 밤을 새며 놀던 중, 그가 갑자기 내게 한 질문 때문이다.

친구는 내게 "늘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정말 한국인들은 공자(孔子)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내가 아는 유교 사상가 공자가 아닌가 싶어 몇번을 되물었으나, 그 공자를 가리키는 게 맞았다. 내가 "한국인 중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더니, 이번에는 "그럼 한자(漢子)도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냐"면서 "(대만인) 남자친구가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설명해줬다"는 것이다.

설마 다른 대만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싶어 친구들과 놀 때 이야기를 꺼내봤다. 그런데 내가 "혹시 이런 얘기 들어봤어? 진짜 황당해서…"라고 입을 떼니, 친구들이 "응, 한국인들 다 그렇게 생각하잖아" "한국은 교과서에서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가르친다며?"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니, 친구들은 도리어 "너는 그 부분 공부를 해서 알고 있나?"라며 "다른 한국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에겐 매우 놀라운 이야기지만, 많은 대만인들은 위의 내용을 사실로 믿고 있다. 그 내용과 종류도 여러가지인데, △한국인은 한자를 한국에서 먼저 사용했다고 여긴다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배운다 △한국인은 중국 혁명 선도자·정치가 쑨원(孫文·손문)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등이다. 대만 사회 기저에 깔린 반한감정이 낳은 악성 허위사실이다.

이 같은 허위사실이 일부 사람들에게만 퍼져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만 총통이 직접 나서 이를 해명한 적도 있었다. 2011년 4월10일,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이 타이페이에 위치한 성요한과기대학(台灣聖約翰科技大學)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을 때의 이야기다. 간담회 도중 한국인 유학생 이진희씨가 손을 들고 한국에 대한 오해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대만에서 6개월간 유학하는 동안 많은 대만인들이 한국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만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공자를 한국인으로 생각한다'며 '공자를 빼앗아가려고 한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한국 유학생들도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대만의 전통음식인 또우장(豆漿·콩국)을 한국이 발명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대만인들의 오해도 있는데, 이런 오해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문화를 빼앗아가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비친다"면서 "대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고 신뢰를 받고 있는 총통이 직접 오해를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마잉주 전 총통은 "한국에서는 공자가 중국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인들은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오해, 즉 '한국인은 남의 것을 빼앗아가길 좋아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불필요한 여타의 문제도 빈번히 생긴다. 힙합 듀오 '프리스타일'의 곡 'Y'를 대만 가수 판웨이보(潘玮柏·반위백)가 그대로 표절하고, 100억원대 저작인접권 소송까지 벌였는데도 오히려 '또 한국인이 우리 것을 빼앗아갔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만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이 실격했을 때 '한국이 양수쥔의 메달을 빼앗아가려한다'는 반응이 일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가장 큰 이유로는 대만 언론을 꼽을 수 있다. 대만 언론은 틈만 나면 사회 기저의 반한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써 독자를 끌어모으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한국 유명대학의 모 교수가 공자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등의 허위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보도해 반한감정을 자극하는 식이다. '양수쥔 사건' 때 진보성향 매체 '자유시보'(自由時報)가 실은, '공자를 한국인이라 주장하던 한국이 이번에는 '대만 태권도의 보배' 양수쥔의 금메달까지 뺏어갔다' 사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언론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겠지만, 대만이 수치상으로는 언론 강국이라는 걸 알게되면 그 놀라움은 더 커진다.

미국의 비영리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매년 '세계 언론 자유지수'(국경없는 기자회가 집계하는 언론의 자유 점수로, 언론인과 미디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간접적인 압력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를 발표하는데, 2015년 기준 대만의 언론 자유지수는 27점으로 '언론 자유 국가'로 분류됐다. 같은 해 '부분적 언론 자유 국가'(33점) 평가를 받은 한국에 비해 대만에서는 언론의 표현 자유가 더 잘 보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유'를 가진 대만 언론이 매체끼리의 과도한 경쟁 끝에 '방종'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대만 언론이 이렇게 된 건 38년이라는 긴 계엄 기간 동안 나라의 표현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억압됐고, 이에 따라 해엄 이후 일종의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장제스(蔣介石·대만 초대 총통~5대 총통)는 중국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1949년 대만으로 패주했지만, 경제적 힘을 키워 중국 대륙을 수복하겠다는 꿈을 끝내 놓지 않았다. 그는 국민당이 끝내 공산당을 이기고 대륙을 수복하려면 대만에서부터 국민당의 기틀을 단단히 다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해 독재 통치를 자행했다. 반대파를 모두 숙청해 백색테러(우익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테러)를 벌였고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動員戡亂時期臨時條款)을 만들어 헌법의 임시조항으로 끼워넣었다. 여기엔 총통의 연임을 허하고, 반란으로 규정된 좌익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감시기구를 설치하며, 국민당 외의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연히 언론도 통제됐다.

하지만 장제스 사후 자리를 물려받아 1978년 총통에 취임한 장징궈(蔣經國·제 6~7대 총통)은 달랐다. 장제스의 아들로 어린 시절 소련을 유학한 바 있는 장징궈는 보다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에 장징궈는 재임 중이던 1987년 7월15일 계엄 해제 조치를 단행하고, 연이어 정당 설립 금지나 신문 발행 규제 등도 해제했다. 이후 대만의 민주주의는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언론의 경우에는 과도하게 억압돼 있던 게 한번에 터져나오면서 늪에 빠졌다. 한마디로 여러 매체가 우후죽순 난립하게 됐고, 극심한 경쟁을 거치며 언론 신뢰도가 극단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대만의 방송·신문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시장이다. 방송의 경우 여러 영세 케이블 방송사가 난립하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은 점차 낮아졌고, 선정적으로 변했다. 이정기·황우념은 책 '대만 방송 뉴스의 현실과 쟁점'에서 "1998년까지 지상파방송의 매출액은 케이블방송의 15배에 이르렀지만, 2003년에는 케이블방송의 매출액이 지상파방송의 3.7배 수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수익창출에 실패한 대만 지상파 방송국은 결국 최소한의 공영성을 상실한 채 결국 케이블 방송사들처럼 선정적이고, 사실에 재미를 가미해 왜곡·조작하는 등 오락만 꾀하는 곳으로 변했다.

신문 시장도 마찬가지다. 2003년 홍콩에 본사를 둔 타블로이드 신문 '빈과일보'(蘋果日報)가 대만에서 창간하며 전통적 신문 '연합보'(聯合報) '중국시보'(中國時報) 등의 입지가 약화됐다. 스포츠·연예신문 빈과일보는 돈이 되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보도해 대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으로 자리잡았다. 빈과일보와 경쟁하며 여타 신문도 너도나도 선정적 보도만을 해댔는데, 결국 전반적으로 신문의 질이 낮아졌고 이는 곧 독자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신문 시장은 이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제대로 교육 받은 이는 타 기업체에 비해 보수가 매우 적은 기자 직군을 외면하고 있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대만에서도 점차 이 같은 언론의 행태에 대한 자성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반한감정을 이용한다는 걸 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한국에 보다 친밀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제 협력이나 문화 교류 등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통해 대만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만 전문가 최창근은 책 '대만·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에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一個中國政策) 원칙을 정치·외교부문에서 강조할 뿐 경제·문화 관계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한국이 경제·문화 관계에서 비공식 실질관계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에 소극적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반한감정 때문에 경제적 실익을 놓치고 있다며 그 사례도 소개했다. 2011년 한국 두산중공업과 일본 미쓰비시-히타치 컨소시엄이 2조 규모의 화력발전소 수주 경쟁을 벌였는데, 시공 능력에선 두산중공업이 우위로 평가됐지만 반한 정서와 친일본 정서 때문에 결국 수주를 맡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규태 관동대 중국학과 교수도 논문 '한국과 대만의 관계'에서 "대만과 경제 협력을 통해 관계를 개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중심의 한국과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이 협력해 중국 대륙 진출에 나서면 경제적 이익 창출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대만은 중국 대륙과 특수한 정치적 관계에 있어 중국이 외자기업들의 특혜조치를 취소하는 등 규제할 때도 대만 기업들은 규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기업들은 이미 이 같은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왕진핑(王金平) 전 대만 입법원장(국회원장)도 이 같은 지점을 주목해야한다며 "한국의 대기업과 대만의 중소기업이 협력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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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방영된 tvN '꽃보다 할배' 대만편 중. /사진=tvN 캡처
문화적으로는 한국이 한류를 다량으로 대만에 수출하고, 이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만큼 대만인들로 하여금 일방적인 교류로 느끼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만 출신 트와이스 쯔위, 워너원 라이관린 등의 한국 연예계 활동은 대만 내부에서 좋은 반응이 나온 긍정적 사례다. 2013년 방영된 tvN '꽃보다 할배' 대만편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할배' 대만편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대만으로 수출됐는데, 대만 학자 궈추원은 이에 대해 "대만인들이 한국인이나 나영석PD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한류 콘텐츠를 통해 양국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또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외교적으로 대만을 우대하거나 인정하는 행위는 할 수 없지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줘 공분을 낳을 필요는 없다는 조언도 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왕진핑 전 입법원장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했다가 직전에 급히 취소한 일은 최악의 사례였다. 그는 천탕산(陳唐山) 국가안전회의 비서장을 비롯 여야의 유력 축하 사절단을 이끌고 내한했지만 결국 참석하지 못하고 돌아가야만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왕진핑 전 입법원장이 인천공항 출국 전 울분에 차 성명서를 읽던 장면이 대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대만인들에게 상처로 남았다.

대만 여행이나 대만인과의 교류를 통해 대만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양국간의 관계도 그렇게 개선해나갈 수 있다. 외교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반감을 줄여나갈 때 양국 관계는 보다 친밀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과 대만의 관계-중화민국 100년: 한대관계의 역사와 현실, 한국중국문화학회, 이규태
대만 방송 뉴스의 현실과 쟁점, 커뮤니케이션북스, 이정기·황우념
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리수, 최창근
한류의 대만 진출 역사 및 대만인의 한류 인식, 디아스포라연구 제12권, 궈추원ㅑ
대만 한류의 양면성… 열광과 외면, 중국학연구회, 황선미
글로컬적 관점에서 본 한류에 대한 재평가, 인문콘텐츠학회, 김성수
뉴미디어의 도입과 정착과정… 대만 케이블 TV의 사례, 언론과 정보, 조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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