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들어도 좋은말 - 이석원

일상/도서리뷰|2018. 1. 1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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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과 에세이의 차이

산문은 운문에 대하여 운율(韻律)이나 정형(定型)에 의한 제약이 없는 보통 문장.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모든 문서류나 일상의 회화(會話)까지 모두 산문에 속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문예용어로 산문문학을 뜻한다.

에세이는 한두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 에세이는 통상 일기·편지·감상문·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양식을 포괄하며, 모든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있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에세이의 종류를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 혹은 공식적(formal) 에세이와 비공식적(informal) 에세이로 나누기도 하는데, 전자는 대개 지적·객관적·논리적 성격이 강하며, 후자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에세이는 산문에 속해 있는 일상적이로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글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크게 와닿았나보다.

언제들어도 좋은말 읽고서...

요즘 나는 특별한 걱정거리가 없다. 물론 회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아직도 갖추지 못한 것들 그리고 산적해 있는 해결거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하루하루를 미친듯이 바쁘게 지내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지는 않게 된 지금이라 걱정거리가 과거 보다는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걱정의 양을 줄었는데 질적인 걱정이 늘어져가는 요즘이었다. 무슨말이냐하면 과거에는 처리해야 하는 걱정들을 하나둘 해결하는데 집중하였기 때문에 질적인 부분까지 생각하지 않았었다. 예를 들면 돈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지 돈을 왜 모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랄까. 하지만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과연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현재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어떤 일상들의 행복을 원하는지 등 과거와는 다르게 질적인 걱정의 깊이가 달라지는 요즘이었다.

그 이유도 그럴것이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 수도록 대화할 사람들이 줄어져가고,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도 부족하고, 같은 취미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 들이 더 어려워 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였지만 아직까지 글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혼자서만 블로그에 끄져길 수준정도 일뿐 누군가 소통하는데는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시간이 조금 남아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 [언제들어도 좋은말]이였다. 우선 제목부터 관심을 끌었다. 뭐 내용과는 특별히 연관된 제목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자 마자 끊기지 않고 쭉 내용을 읽으며 완독을 했다.

예전에는 산문집(에세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보는 책의 종류가 지극히 한정적이였다. 자기개발서 아니면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을 주로 있었기 때문이다. (애기 했던 것과 같이 예전에는 질보다는 양으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더 강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산문집(에세이)는 그저 시간이 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놓은 지극히 개인적인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즉, 정보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니였던 거다. 나에겐.

하지만 이번에 읽은 [언제들어도 좋은말]은 질적 목마름이 강하게 솟구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있어 아주 적합한 책이였다. 그냥 나와 같은 생각과 나와 같은 고민과 나와 같은 잡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에 공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나만 매번 특별히 별 것 아닌 것에 상처받고, 별다른 성격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을 가지 이상한 "종자"로 생각했었는데 책속의 별 것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읽으며 공감이 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남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던 나였는데. [언제들어도 좋은말]을 통해 보다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 가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와 같은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들어도 좋은 말에서...

방어적 인간

살다 보면 미묘하게 부닥치는 사람이 있다.
웃고 인사하고 잘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부턴가 대하는 게 뭔가 트릿하고 낌새 이상하고 그런거...
그래서 찝찝한 거.
그럴 때면 난 우선은 나의 오해는 아닌지 의심해 본 뒤,
이상한 낌새가 확실하다 싶으면 내가 먼저 원인 제공을 한 건 없는지, 

이런 내 불편함이 타당한 것인지 따져본다. 제삼자에게 물어보기까지 하면서.
이 모든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절차들은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든 내 쪽에서
찾으려는 노력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나로선 도저히 이 상황의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쓸 수밖에 없는 최후의 방법 나한테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상대에게 직접 물어보는 껄끄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물었다가 자긴 아무렇지 않은데 왜 그러냐는 그 예상 가능한 최악의 대답을 듣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또 다시 그 대답이 진심인지 아닌지 파악하려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처럼 방어적 인간

마음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 떨어져 피어나는 것

누군가 물을 주면
이윽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그렇게 뿌리내려 가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라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 말을 하지
나는 나라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해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인데
왜 네 기준을 함부로 남에게 적용하는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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