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필요한 이유 : 23년 총리직을 맡은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일상/다양한이야기|2017. 11. 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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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매일 1시간씩 뛰다 보니 심심해서 지금껏 듣지 못했던 [이진우의 손에잡히는 경제]를 정주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7월달 부분을 듣고 있으니 하루에 2개씩 듣는다 해도 현재시점을 따라 잡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들으려한다. 게다가 팟캐스트가 좋아져서 듣는 시간 만큼 캐시도 부여되는데 솔직히 이것을 노리고 듣기에는 금액이 너무 적다. 1시간에 1원. 하루종일 틀어놓는다고 해도 생기는 캐시는 24원이다. 내 아무리 부가소득을 얻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이건 너무 금액이 적다. 그냥 매일 운동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손에잡히는 경제]나 재미있게 들으련다.

[손에잡히는 경제]를 듣다보면 수없이 반복적으로 했던 주제를 다룬다. 그도 그럴것이 들었을때는 알겠는데 까먹게 되는 내용도 있고 라디오 방송상으로 모두 다루기에는 분량이 많은 주제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같은 주제를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실생활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나도 꽤 경제에 관심을 가진다고는 하지만 팟캐스트를 듣다보면 처음듣는 애기,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 들을 듣기도 한다. 이진우 기자는 농담삼아 자신이 사회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당했기 때문에 모든 사항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먼저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때문에 [손에 잡히는 경제]가 인기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청취자와 같은 시선으로 그리고 질문하고 싶기 애매한 사항들을 시원하게 질문하니 더 집중하게 되니까 말이다.

오늘은 수많은 주제 중에서도 서두에 이진우 기자가 했던 오프닝 중 인상깊었던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방송시점은 7월이였기 때문에 문제인 정부가 재계를 만나 호프미팅을 하며 행사를 가졌던 내용을 이슈로 제시한다. 즉 다른 정권과는 다르게 문재인 정부는 재계인사들을 직접만나 호프미팅도 하고 식사토크도 하면서 다양한 소통의 방식으로 재계와 이야기를 한다는 부분이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스웨덴에서 23년간 총리직을 맡았던 [타게 엘란데르]에 대해서 설명한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당시 스웨덴은 기업과 노사간의 갈등이 너무 깊어 서로 대립만 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헌데 [타게 엘란데르]가 매주 목요일 기업과 노사 대표들을 만나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여러 문제현황들을 정리하였고 가장 높은 기업세를 내게끔 까지 이끌었던 전략과 더불어 최장기 총리직을 맡은 사람이라는 내용이였다. 매주 목요일 기업과 노사 대표들을 만나는 자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고정적, 주기적으로 실시되서 [목요클럽]으로 불리면서 노.사.정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소개했다.

제대로 일을 하려면 제대로 소통하는게 맞지 않을까?

이 내용을 들으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기업에서 일하는 우리, 혹은 가정에서 이야기 하는 나를 바라봤을때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솔직히 기업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말한마디면 해결될 것을 가지고 몇날 몇일이 걸려 문서로 이야기 한다. 결과는 무엇을 하겠다 인데 그것을 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투여해서 문서를 만들고 만들어진 문서도 내 위 상사, 그 위의 상사, 최종 결재자 버전으로 각각 만들어져 하고자 하는 일이 한달이상 걸리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그냥 그러지 말고 매주 하루 정도는 업무에 대한 방향, 그리고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등에 대해 서로 각각의 생각을 공유하고 합의를 이뤄서 진행한다면 이렇게 불필요한 시간과 문서를 만드는데 드는 노력이 없어지지는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정권이 바뀐 지금의 정부에게도 부탁하고 싶었다. 어차피 일은 공무원들이 수행한다. 이 말은 방향성만 명확해지면 세부적인 계획이나 실행안은 어차피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방향성도 모르는채 다양한 분석을 해가며 어설픈 실행안을 도출해서 보고하는 절차가 아니라. [타게 엘란데르] 총리처럼 매주 1번 정도는 노.사.정과 만나 서로 소통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서로 양보했으면 하는 부분을 꾸준히 논의한다면 구체적인 방법과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5년 마다 바뀌는 정권마다 새롭게 무엇을 하는게 아니라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문재인 정권도 초기에는 여러 이슈들로 회자가 되었지만 요근래 들어서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존의 정권도 별다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물론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이왕 다를거 확실하게 그리고 꾸준히, 지속적인 태도로 진정한 소통을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란다.

타게 엘란데르 총리는...

란세테르(Ransäter)에서 교사인 아버지 에릭 구스타프 엘란데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름은 알마 닐손이었다. 룬트 대학 재학중에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져 여러 강성 학생들을 만났다. 1928년 졸업한 그는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29년부터 38년까지 백과사전인 스벤스크 우플락스보크(Svensk Upplagsbok)의 편집자 중 한명이었다. 1930년에 그는 아이나 안데르손(Aina Andersson)과 결혼했다.

타게 엘란데르는 1930년 룬트(Lund)주의 시의원으로 당선되었고 32년에는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건강사회부(Minister for Health and Social Affairs)의 지방행정비서(Secretary of State)로 선임되었다. 행정비서 시절 엘란데르는 스웨덴 내의 2차대전 난민캠프의 설립을 지원한 고위 관료 중 한명이었다.[2] 캠프의 존재는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소수민족과 공산주의자들로 대표되는 정치적 박해자들을 보호했다.[2]

1942년 행정비서였던 엘란데르는 당시 사회부 장관 구스타프 묄러와 함께 500년 이상 스웨덴 거주자로 살아왔던 집시들을 위해 노르웨이-스웨덴 여행자 등록 정책을 진행했다.[3] 이런 등록제도의 목적은 스웨덴 하층민들을 보호하여 좌파적 기반을 다지려는 것으로 알려졌다.[3] 노르웨이에서는 나치 점령 기간에 이러한 리스트가 나치 손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3]

엘란데르는 1944년에 무임소 장관으로 발탁되었고 다음해에 교육부 장관이 된다. 당시 사회민주당은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페르 알빈 한손 총리가 1946년에 급사하는 바람에 엘란데르는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다. 엘란데르는 예상치못하게 총리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회민주당의 리더가 되었다. 엘란데르는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스웨덴 정국을 계속 주도했다. 1951~57년 사이에는 정권 유지를 위해 스웨덴 농부연맹(스웨덴 중앙당의 전신)의 의장 군나르 헤들룬드에게 연립정부를 제안하여 성사시켰다.[4][5]

엘란데르는 '강한 사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고, 부유한 사회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수요에 부응하고, 공공의 영역을 확대해나간다는 설명을 붙였다. 국유화를 별로 시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영역에 대한 관심은 그의 긴 총리 재임기간 내내 가졌던 주요 관심사였다.

1968년의 총선거는 그의 7번째이자 사회민주당이 거둔 최대의 승리었지만 자신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여겨 사임했다. 후임은 오랜 동지이자 친구인 올로프 팔메였다. 1969년 퇴임할 때 기거할 집이 없어, 스웨덴 국민들이 별장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72년부터 82년까지 그는 6권짜리 회고록을 작성했다.

1985년 6월 21일 84를 일기로 사망한 엘란데르의 장례식은 그의 고향인 란세테르(Ransäter)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아들 스벤 엘란데르는 수학자로, 2001년부터 타게 엘란데르의 일기를 출간했다.

"목요일이 한가하니. 아예 매주 목요일에 만나서 저녁식사를 합시다"

매우 바쁘신 기업의 리더, 한국의 대통령이겠지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매주 정기적인 소통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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