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일상/영화리뷰|2017. 7. 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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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시작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조선의 아나키스트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과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의 표출
 
 1. 아나키즘(anarchism)의 태동과 변천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 라는 어원으로부터 유래된 ‘아나키즘’은 모든 제도화된 정치 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을 뜻한다.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힘을 부정하는 사회철학이자 정치이념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활약했던 근대 아나키즘의 선두주자 영국의 W.고드윈(William Godwin)에 의해 성립되기 시작했고,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며 사상을 형성시킨 프랑스의 P. J.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 세계의 아나키즘을 이끌었다. 이후, 러시아의 M.A. 바쿠닌(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акунин)이 민족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결부시켜 성격을 바꾼 아나키즘은 19세기 유럽의 혁명운동에 영향을 미치며 남유럽, 북미 등 산업화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크로포트킨(Pyotr Alekseevich Kropotkin)의 이론에 의해 더욱 체계화된 아나키즘은 한, 중, 일 등 동아시아의 혁명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정치적으로는 분산되었으나 관료화되고 조직화된 현대의 산업사회 가운데 여전히 매력적인 사상으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으며, 그 결과 생태주의, NGO 활동과도 연계해 발전해가고 있다.
 
 2. 일제강점기 아나키즘과 항일 투쟁 운동
 서구의 사상들이 이념의 장처럼 난립하던 일제강점기, 3.1 운동을 계기로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적 투쟁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의 부당함과 폭력성에 분노하던 조선의 젊은이들은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중의 평등성, 권력과 폭력의 부당성을 기저로 한 아나키즘을 토대로 항일운동을 본격화했다. 일본 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천황제와 제국주의 내각의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한 조선의 젊은이들은 보다 더 직접적인 행동으로 항일 투쟁 운동을 시작했고, 이들이 바로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었다.
 
 3. 조선의 아나키스트
 일제 치하의 한국 아나키즘은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일본과 중국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시기 일본과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던 박열, 신채호, 김원봉, 유림, 이회영, 백정기, 유자명 등이 대표적인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다. 이들은 권력의 속성인 억압과 강제를 거부하고 평등을 이념으로 삼은 독립된 주체로서 자유를 신봉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또한 아나키즘의 사상과 이념을 바탕으로 시, 소설의 창작 등 문학 활동을 비롯해 음악과 그림으로 이어지는 예술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과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표출하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실화!
 철저한 역사 고증에 기반한 스토리가 선사하는 강력한 울림!
 
 최근 일본 정부가 1923년 발생한 간토(關東, 관동)대학살 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할 예정이 없다는 답변서를 채택했다는 언론매체의 보도가 전해졌다. 2017년 5월 12일,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에서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입장을 밝혔음을 전했다. 영화 <박열>은 9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간토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간토(關東,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내각은 민란의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를 계기로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이 학살 당하는 이른바 간토대학살이 벌어지게 되는데, 국제사회의 비난이 두려웠던 일본은 사건을 은폐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불령사 를 만들어 활동했던 대표적 불령선인 ‘박열’을 지목하게 된다.

 영화 <박열>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본 내각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그들의 끔찍한 만행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스스로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조선 최초의 대역죄인이 되어 사형까지 무릅쓴 공판을 시작한다. ‘박열’과 ‘후미코’의 이러한 활약은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당시의 일본 신문들에서 상세히 다뤄졌는데,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각 신문사에 연락을 취해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의 신문 기사 내용을 모두 요청해 검토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보면 많은 분들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대법정에서 조선인이 어떻게 저런 일을 벌일 수 있지?’라고 놀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모든 이야기는 당시 ‘박열’의 활약이 담긴 신문과 기록물들을 통해 고증된 명백한 사실이다”라며 영화 속 모든 사건이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이 아닌 철저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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