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 일하고 칼퇴근… 스웨덴 ‘6시간 근무’의 기적
올 4월 브라트에 입사한 토마신 바르네코프(오른쪽)씨가 5월 30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6시간만 근무한 이후 확실히 업무 성과가 향상됐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IT 기업 브라트
“퇴근 후 미술관 가고 취미활동
실수는 줄고 결과물은 좋아져”
초과근무 보상 금전 아닌 휴가
구인노력 안 해도 최고 인재 몰려
“요즘은 친구와 아침 약속을 잡아요. 스톡홀름 다운타운의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만나 아침식사를 같이 한 후 출근하는 거죠. 하루 6시간만 일하니까 아침에도 피곤하지가 않거든요.”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인 토마신 바르네코프(55ㆍ여)씨는 오전 8시 반에서 9시 사이 출근해 오후 3시 반에서 4시면 퇴근한다. 6시간 근무제를 시행 중인 스웨덴 검색엔진 최적화(SEOㆍSearch Engine Optimization) 기업 브라트(Brath)로 올 4월 이직한 후 생긴 변화다. 문화ㆍ예술과 스포츠 분야에 조예가 깊은 그는 오전 6시 요가 수업을 다녀온 후 좋아하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출근 전 오전 시간을 보낸다. 업무가 끝나는 오후 4시 이후에는 평소 좋아하던 뜨개질과 미술관 나들이에 시간을 쓰거나 업계 동향과 혁신기술을 공부한다. 아이가 없는 바르네코프씨 부부에게는 퇴근 후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도 주요 일과.
“입사 전 6시간만 근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믿지 않았어요. 20년 넘게 IT 분야에서 일하면서 말이 8시간 근무제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주말에도 근무한 적이 많았으니까요. 새로운 혁신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IT업계는 따라잡아야 할 기술이나 콘텐츠가 정말 많고, 미국과 많은 것을 경쟁해야 하거든요.”
설마했던 6시간 근무제는 그러나 ‘칼 같이’ 실시됐다. 각자 출근한 시간에 근무시간 6시간과 점심시간 1시간을 더한 후 해당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퇴근한다. “정신도 못 차리게 바빴던 나날들에서 벗어나 간절히 원했던 일과 삶의 균형을 마침내 얻었죠. 놀랍게도 업무성과는 훨씬 더 좋아졌고요.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 상태로 일할 때보다 확실히 실수를 덜하고, 결과물이 더 좋아졌다는 걸 스스로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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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트의 6시간 근무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데는 불필요한 회의와 관료주의적 행정업무를 대거 축소한 것이 주효했다. 브라트 스톡홀름 본부의 직원들이 피카타임을 겸해 통상 주 1회 갖는 업무 회의를 하고 있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업무시간 줄이니 생산성도 ‘쑥’
스톡홀름 번화가 쿵스가탄에 자리한 브라트는 스웨덴 북부 외른셸스비크에 본사를 둔 SEO 기업이다. SEO란 기업의 웹사이트가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도록 웹 페이지를 구성해 웹 방문객 수를 늘리는 인터넷 마케팅 기법의 하나. 창업자 마그누스 브라트와 CEO인 여동생 마리아 브라트의 노동철학에 따라 2012년 설립과 동시에 6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노동조건 좋기로 유명한 스웨덴에서도 IT업계와 언론계는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다. 하루 12~14시간씩 일하는 게 흔하다.
“창업자와 저 모두 SEO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서 더 짧은 시간 일할수록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경험과 확신이 있었어요. 한번 시도해 보자 결정하고, 1년 후 첫 성과를 확인했죠.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8시간 이상 근무하는 동종업계 회사들과 콘텐츠 생산량을 비교, 측정했는데 우리가 월등히 높았으니까요.” 마리아 브라트 CEO는 “매년 두 배 이상의 수익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가 스웨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할 뿐 아니라 노르딕 지역의 가장 유망한 SEO 기업이 된 것은 모두 6시간 근무제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천국’ 스웨덴의 IT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업무량 자체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브라트는 6시간 근무제를 착근하기 위해 근무시간의 85%는 고객이 맡긴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고 나머지 15%만 내부 행정업무에 쓰도록 규정했다. 마케팅 컨설팅 프로젝트마다 소요 시간을 계산해 시간 단위로 과금하고, 관리자 포함 직원 4명당 95시간 이상의 업무량이 생기면 신규 직원을 채용한다. 덕분에 직원 5명에서 시작한 회사는 현재 20명으로 규모가 커졌고,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가 주말 내내 일하는 상황은 생긴 적이 없다. 토미 오팅예 스톡홀름본부장은 “인력이 모자라면 고용을 해야 한다”며 “모든 일은 사무실에서 끝내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만연한 ‘인건비 따먹기’ 같은 표현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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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의 오피스 빌딩 밀집지구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최고의 인재가 몰린다
6시간 근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인재 채용에 있다. 동종업계에 이런 근무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없다는 것 자체가 막강한 경쟁력이다. “IT 기업들이 흔히 창의적 디자인의 사무실, 플레이 룸, 사내 카페와 공짜 음료수 같은 직원 복지를 내세우지만 브라트는 별다른 구인 노력 없이도 최고의 인재를 채용할 수 있었다”며 “그들이 이직하지 않고 오래 근속한다는 게 브라트의 성공 비결”이라고 브라트 CEO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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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트 스톡홀름 사무실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6시간 근무제는 어떻게 조직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가에 승패가 달려 있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SEO는 아직 전문가가 많지 않은 톱 비즈니스고, 업계 모두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 헤매고 있죠. 근속연수는 업계 평균 3년에 불과하지만 브라트 직원들은 5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애사심이 아주 높습니다.” 행복한 직원이 유능한 직원이기 때문에 회사를 사랑하는 직원들의 생산성이 더 높은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게 브라트 CEO의 자랑이다. “단지 일을 조금 하고 싶거나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오는 직원들을 걸러내야 한다는 게 부작용이긴 하지만요.”
초과근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2주에 한번 꼴로 한두 시간 생기는 정도다. “엄마가 좀 늦었네”하며 들어서는 시간이 8시간 근무제를 하는 회사보다 더 이르거나 비슷하다. 스웨덴은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금전이 아닌 휴가로 하기 때문에 브라트 직원들은 5주의 기본 휴가에 초과근무에 대한 일괄보상으로 1주일간의 휴가를 추가 지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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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의 위기를 노동시간 단축으로 돌파한 스웨덴 광고회사 OSS. 창의적인 업무일수록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율리아 벤델린(뒷줄 왼쪽) CEO가 직원들과 함께 제작 중인 광고 영상을 살펴보고 있다. 비스뷔=박선영 기자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스웨덴 고틀란드섬의 주도인 비스뷔에 위치한 광고ㆍ마케팅회사 오스(OSS)는 지난해 3월 15일 전격적으로 6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1996년 설립된 오스는 지면광고, 소셜미디어 마케팅, 동영상 광고, 제품 포장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광고 마케팅 업무를 하는 회사다. 2003년 이 회사를 인수한 율리아 벤델린(45) CEO는 지난해 회사 경영이 위기에 처하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때부터 꿈꿔왔던 6시간 근무제를 회의 테이블에 올려놨다.
“변화가 필요했죠. 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여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찬성하더군요. CEO로서 두려웠어요. 경제적 리스크가 상당하니까.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단어는 균형입니다. 일단 6개월간 시행해 본 후 계속 여부를 논의하기로 하고 그 다음날 바로 시행에 들어갔죠.”
#광고회사 OSS
CEO 작년 회사 경영 위기 때
임금인상 대신 ‘6시간 근무’ 도입
1년 만에 오히려 수익 20% 올라
불필요한 회의 없애는 게 첫 발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경영학 이론으로 익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해보기까지는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과연 이게 될까’ 의구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1년 만에 수익이 20%나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창의성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낭비 없이 알짜배기로 일한 덕분에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졌고, 늘어난 휴식시간 덕분에 영감이 충만해졌죠. 우리 직원들은 예술활동에 매우 적극적이거든요.” 10대 때부터 재즈댄스를 춰온 벤델린 CEO는 십 수 년째 댄스스쿨 강사로 출강 중이며, 예술감독인 크리스토퍼-로빈 모린씨는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이다 앤더슨 밴드의 기타리스트다. 삼보(법적 보호를 받는 동거) 관계인 에릭 라르손씨와 힐리아나 홀름그렌씨는 뮤직클럽 운영자다.
한국이 노동시간 단축에 실패해온 가장 큰 원인은 임금 삭감이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노동시간 단축에 비례한 임금 삭감을 주장하는 경영계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벤델린 CEO는 “두 시간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을 전액 동결하고 실시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금을 줄이면 직원들은 그걸 벌충하기 위해 다른 파트타임 잡을 구할 테니까요. 그러면 노동시간을 줄여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근본 취지가 훼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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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 항구 앞에서 발트해를 바라보며 간단히 점심식사 중인 직장인들. 낮 12시부터 1시간 주어지는 점심시간은 간단한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주메뉴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효율성의 누수를 막아라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 증대를 유발하는 것이지 생산성이 증대돼야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6시간 근무제를 체험한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다. 업무 시스템 효율화를 통해 생산성 손실 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불필요한 회의를 과감히 없애는 것은 첫째 선결조건이다. 커피와 시나몬롤을 먹으며 하루 두 차례씩 즐기던 스웨덴의 전통 문화인 피카타임을 주 1회 이하의 비정례적 이벤트로 줄이고, 관료주의적 행정업무와 온갖 요식적 잡무도 없앴다. 반면 직원의 업무량이 적절하고 업무 진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관리자의 직무관리 역량은 매우 중요해졌다. 일만 맡겨놓고 폭탄이 터지도록 방치하는 일은 발생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폭탄이란 한 일을 다시 하거나 없던 일로 하는 등의 극단적 업무 비효율 사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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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여름을 즐기며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즐기고 있는 스톡홀름의 직장인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오스의 벤델린 CEO는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를 재고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체로 첫 번째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일 때가 많고, 효율성이 가장 높은 때는 마감 직전”이라며 “먼저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직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고 강조했다.
브라트의 오팅예 본부장은 “8시간 근무에서 6시간 근무로의 이행은 마이크로 브레이크(1분 이하의 짧은 휴식)를 어떻게 줄이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8시간 중 집중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6시간 정도죠. 나머지 2시간은 잠깐씩 쉬면서 일을 천천히 하거나 딴생각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입니다. 8시간 연속 창의적일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회사는 모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며 “6시간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기업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여 봤을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6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며 근무시간 중 사적 통화, 이메일, 잡담 등을 금지한 회사도 있지만, 브라트와 오스 모두 직원 자율에 맡긴다. 조직 효율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장시간 노동(특히 사무직)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한 채 마이크로 브레이크로 시간을 보내며 직장에만 붙어있을 것인가,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도모하며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 노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회사가 유연근무제 등으로 야근을 없애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한가지 되짚어 봐야할 사항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일하는 시간을 줄여도 근로자들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직장에 얾매어 있었다. 그래서 일찍 끝나더라도 할게 없다. 기껏해야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먹거나 하는 정도 인데 이런 것은 라이프를 즐기는 형태가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부수적으로 하고 가정을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업무 시간이 줄어 들더라도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 또한 일하는 시간이 정착되면 차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직장 이외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즉, 과도한 사교육, 물가상승률 대비 오르지 않는 월급 등이바로 그것이다. 결국 일찍 일을 마친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삶을 본인의 취미와 가정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공허한 시간만 더 늘어날 뿐이다.
지금이라도 직장 이외의 삶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삶의 밸런스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근무시간의 축소는 또 다른 문제를 양상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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