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 A Silent Voice

일상/영화리뷰|2017. 5.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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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디즈니 애니도 좋아하긴 하지만 일본애니의 경우 굉장히 인간적이라는게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매우 감성적이다. 그리고 따뜻하다.

목소리의 형태라는 제목도 매우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와 포스터 이미지를 확인했을 때는 일본 특유의 알싸한 사랑이야기 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지만.

알고보니 목소리의 형태는 이미 만화책으로 인기를 끌었던 애니였다. 물론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정보나 이슈에 둔감한 나로서는 바로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작품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느낀 점이지만 영화에서 차마 이해하기 어려웠던 상황들은 만화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목소리의 형태 스토리

<목소리의 형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녀 ‘쇼코’와 그녀를 괴롭혔던 소년 ‘쇼야’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따분한 게 질색인 아이, 이시다 쇼야.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 인류의 진화과정이라든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하루하루 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만을 찾는 소년이다. 

어느 날 쇼야의 따분함을 앗아갈 전학생이 나타났다. 니시미야 쇼코. 귀엽게 생긴 소녀 니시미야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이런 니시미야를 쇼야와 반친구들은 계속해서 짓궂은 장난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생글생글 웃으며 사과하는 니시미야에게 짜증이 났도 괴롭힘은 더 심해져 간다. 모두가 니시미야를 괴롭히긴 했지만 가장 주도적이였던 이시다였다. 결국 그의 괴롭힘에 니시미야는 전학을 갔고, 오히려 이시다와 함께 니시미야를 괴롭혔던 다른 친구들은 이시다를 왕따하기 시작한다. 
  
 6년 후, 더 이상 이렇게 살아봐야 의미가 없음을 느낀 이시다는 마지막으로 니시미야를 찾아간다. 처음으로 전해진 두 사람의 목소리. 두 사람의 만남이 교실을, 학교를,  그리고 이시다의 인생, 니시미야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색감도 연출도 아름답다

목소리의 형태의 포스터를 보았을때 굉장히 몰입이 되었다. 봄날 맑은 물과 벗꽃이 어울린 개천에서의 두 주인공이 서 있는 포스터만 보더라도 색감 및 구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작품이 연애물이라는 상상을 했었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았다. 물론 두 소년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근본적으로 이야기 하기는 하지만 말랑말랑한 연애물은 아니였단 의미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사회를 바라보다  


위 장면은 니시미야가 이시다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오는 장면이다. 여기서 내가 보았던 점은 선생님의 배려없는, 그리고 너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학생들 앞에서 보인다. 선생님은 니시미야에게 전학인사를 시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니시미야가 어떤 상황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니시미야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당연히 선생님이 알았을텐데도 자기소개를 하라고 이야기 했다. 니시미야의 눈이나 글로 이야기 한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본인 이야기만 전달했다. 당연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수 없었던 니시미야가 가만히 있자 선생님은 니시미야의 어깨를 치며 자기소개를 하라고 재촉한다.

목소리의 형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선입견과 더불어 무관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는 사람에 대해 구분하는 방법만 배워왔다. 하지만 구분하는게 아니라 어느 부분이 다른지를 알려줬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구분하는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당연히 여기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어린이들도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되서는 안된다.

자의식을 높여야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은 자의식이 상당히 낮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나오는 니시미야, 이시다 역시 자의식이 낮았기 때문에 죽음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무리문화가 있다. 즉, 그 무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따돌리거나, 흉을 보기 시작한다. 이말은 기준에서 벗어난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지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신은 포함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남을 의식해서 본인이 잘못된 거라는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

잘못된 것은 없다. 이세상에서 규칙과 제도는 인간이 만든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지 않은 규칙과 제도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과의 문제에서는 너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안의 자의식이 높다면 나를 비롯해 상대방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아주 따듯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얼마전 <너의 이름은>을 본 후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었다. 이런 따뜻한 감성을 표현하는 일본의 대표 감독들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에 대한 생각도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편가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목소리의 형태>의 주인공처럼 과거의 실수를 극복하고 발전적인 삶의 방향을 추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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