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조커

일상/영화리뷰|2019. 10. 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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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를 개봉한지 10여일이 지난 오늘 관람을 했다. 주변 지인들은 이미 본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모두 '다크나이트'와 같은 액션씬은 없지만 다른 차원으로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였다. 영화 '조커'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고담시의 광대 아서가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점차 조커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DC의 빌런으로 알려져 있는 '조커'를 내세운 이 영화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대중성보다 예술성을 앞세운 영화로 평가 받았지만, 최근 한국의 대중들은 그 어느 작품보다 이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같다. 영화는 현실과 분리되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풍자하는 매체다. 상상의 도시 고담시의 모습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보다 과장된 모습이지만 완전히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영화 속 고담시는 우리에게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헬조선’, ‘흙수저’로 대표되는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군중들은 좌우로 나뉘어 연일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현 시점의 한국사회도 고담과 비슷할지 모른다.

영화 [조커] 줄거리


1980년대 
초 가상의 도시 고담.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은 극에 달하고, 플렉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은 내일이 오는 것조차 두렵다. 플렉은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아파트에서 광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코미디언이 꿈이지만 정작 그는 남들을 웃기는 재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해피’라고 불린다. 하지만 정작 플렉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긴장된 상황에서 저절로 웃음이 터지고, 이를 멈출 수 없는 질환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 양아버지에게 학대당해 뇌를 다쳤기 때문이다. 그가 지하철에서 우발적 살인을 벌이게 된 것도 그의 질환을 비웃음으로 오해한 부자들과 시비가 붙어서였다.

 

이런 그를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거나 함께 버스를 탄 승객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시의 복지 예산이 줄면서 무료로 이용했던 정신과 상담마저 받을 수 없게 되고 급기야 그는 조그만 실수로 회사에서 해고돼 천직이라 여겼던 광대 일자리도 잃고 만다.

 

심지어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마저 쓰러지면서 플렉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되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가 평생 숨겨왔던 비밀에 대해 알게되면서이다. 자신은 어릴 때 입양됐고, 어머니 또한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망상에 빠져 살아왔고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친아버지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죽음이 내 삶보다 가치 있기를”


조커가
 악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또는 그의 힘의 원천은 바로 ‘광장의 분노’에 있다. 생방송 도중 그가 사회자를 총으로 죽이고 경찰에 바로 잡혀갔다면, 성난 군중들이 그가 탄 호송차량을 탈취하지 않았다면, 광대 분장을 하고 가면을 뒤집어 쓴 시위대가 길거리에 나오지 않았다면 조커는 결코 악당이 될 수 없었다. 분노한 군중은 십자가를 짊어질 새로운 주인을 찾아낸다. 그게 바로 아서 플렉, ‘조커’였던 것이다.

 

영화 속 고담시는 정치와 경제, 권력과 부를 모두 장악한 부르주아들의 세상이다. 영화속에 부르주아의 상징으로 아서가 한때 친아버지라고 믿었던 토마스 웨인(배트맨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다. 고담시에는 이들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언론과 시민단체는 보이지 않는다.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 환원하겠다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업인도 없다.

 

무엇보다 고담시에는 사회적 약자와 빈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적 채널이 부재해 보인다.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 아래 정의의 원칙이 지켜질 때인데도 말이다. 그 중에서도 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용인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은 롤즈가 말한 정의의 2원칙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라’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정치적 창구가 필요하다. 정치 대표자들이 이 원칙이 준수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대의(代議)’는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정치의 본질은 사회 갈등과 균열을 대리해서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고담시에서는 정치가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플렉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 외면되고, 이를 참다못한 군중들이 광장에 나와 폭도로 변한 것이 아닐까?

 

영화 조커를 통해 생각해는 한국 사회


고담시엔
 균열과 갈등을 대표할 만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컵에 물이 차면 언젠가는 넘치듯, 시민들의 분노는 광장을 통해 표출되었고 영화 속에서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이 ‘조커’였다. 시민들의 광기어린 '파토스'는 조커라는 '에토스'를 만나 폭력과 극단으로 치달았다. 영화 '조커'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현재 한국사회와 비슷해 보인다.

한국은 시민들의 목소리는 다양한데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 2개의 진영 논리뿐이다. 무슨 이슈를 대입해도 한국 정치는 진보의 ‘적폐’와 보수의 ‘빨갱이’로 찢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여당이 됐든 야당이 됐든, 제도권 정당 중 어느 곳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계속 늘고 있다. 최근 20대가 여권에 등을 돌렸는데도, 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정치는 사회 균열구조와 정당체제의 불일치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일례로 세대갈등이 번지는 주원인 중 하나는 이 문제에 있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유권자 중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34%지만 20대 국회 당선자(지역구)는 0.4%에 불과하다. 반면 유권자의 19.9%인 50대는 55.5%나 된다. 40세 이하 국회의원 비율이 높은 덴마크(41.3%), 스웨덴(34.1%), 프랑스(23.2%) 등 유럽 국가들과 대조되는 현실이다. 정치를 ‘종신직’으로 여기는 미국(6.6%)도,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8.3%)도 한국보다 높다. (2018년 국제의회연맹 보고서)

아서가 영웅이 된 '조커' 속 고담시는 가진 자들이 비난 받고, 있는 자들을 타도하는 것이 정의로 여겨지는 세상. 이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정신과 배치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폭력마저 정당화 되는 모습은 여차하면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같아 불안하다.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문명사회의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길, 열린사회의 길만 있을 뿐이다.” 칼 포퍼



※ 인용글

'조커' 향한 미국의 이유있는 우려 [★날선무비]

[윤석만의 인간혁명] 악당 조커를 탄생 시킨 건, 쏟아져 나온 '광장의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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