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5 경제기사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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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일반] 20代 초부터 주식투자 수백억대 자산가…서른두살의 박철상씨

박철상 씨가 개인 자산으로 운영하는 장학기금은 9개, 지난 9년간 기부한 자산은 20억원이 넘는다. 그는 장학기금 운영을 위해 직접 면접을 보고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주식 투자로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된 30대 청년의 모습은 어떨까. 청년 자산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멋진 외제차에 명품 시계, 명품 옷 하나쯤은 걸쳤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 봤다. 인터뷰 시간이 가까워 오자 약속 장소인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 그가 나타났다. 까만테 안경에 백팩을 멘 수수한 옷차림의 청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소곳한 걸음으로 기자에게 다가온 그는 "안녕하세요. 기자님이시죠"라고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20대 초반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주식 부자가 됐으며 이제는 '청년 기부왕'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박철상 씨(32)다.

박씨는 지난 9년간 20억원이 넘는 자산을 기부했다. 주식 투자로 자산가가 된 비결도 그렇지만 매년 수억 원을 선뜻 기부하는 사정도 궁금하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해 왔지만 매일경제신문 인터뷰에는 흔쾌히 응했다.

― 언론 인터뷰는 잘 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 인터뷰나 방송 출연 제의를 많이 받는 편이지만 대부분 정중히 거절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수락한 것은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죠. 제가 인터뷰나 강연을 하는 유일한 목적은 기부문화가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에 빗대 '청년 버핏'이란 별명도 있는데.

▷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겉치장이나 수사(修辭)는 불편해요. 지금은 주식 투자도 그만뒀으니 앞으로 그런 별명은 안 붙였으면 해요(웃음).

― 투자 강연 요청도 많이 들어오죠.

▷ 네, 많이 들어와요. 대부분 큰 금액의 강연료를 제시하죠. 하지만 저는 공익 목적에 한해서만 강연을 해요. 주로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물론 학생들에게 금융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죠.

― 지금까지 얼마나 기부하신 건가요.

▷ 약정이 아닌 현재까지 실제로 전달한 기부금만 9년간 20억원 정도예요. 모교인 경북대와 대구지역 고등학교 4곳에 제가 출연한 발전기금으로 9개의 장학기금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약 600명의 장학생에게 9억원을 지급했어요. 이외에도 의료기금, 위안부 할머니, 취약계층 등에도 기부를 했어요. 올해 봄에 10번째 장학기금이 완성되면 매년 8억원 이상을 정기적으로 기부할 계획이에요.

― 장학금 출연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 학생이 경제적인 제약으로 꿈을 꿀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면 그건 사회와 공동체의 연대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는 부모님 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데 누구는 그러지 못해 기본적인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사회잖아요.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결정된다고 봐요. 그 시기에 학생들이 좀 더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거죠.

― 학생들에게 감사 편지도 많이 오겠네요.

▷ 손편지나 이메일 같은 건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받아요. 제 연락처나 메일 주소를 모르기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 받죠.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제 입장에서는 고맙기도 하고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 박철상 씨 이름을 딴 장학금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

▷ 저는 장학생으로 선정되는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박철상'이라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 말고 사회에 고마움을 느끼라는 얘기죠. 이 친구들이 나중에 사회인으로 성장했을 때 그 고마움을 어려운 주위를 살피는 데 갚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장학기금 명칭은 학생들에게 공모를 받아 짓고 있어요.

― 장학생 선발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 제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면접을 보고 선발합니다. 선발할 때는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해요. 먼저, 경제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자기 역량 쌓을 시간을 찾아주기 위해서죠. 또 하나는 학업으로 드러나든 어떤 일에서 드러나든 그 친구가 열정과 의지가 있는지를 살펴봐요. 단순히 형편이 어렵다고 장학금을 주는 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거든요. 마지막 하나는 이 친구들이 장학금을 받은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인이 됐을 때 과연 같은 역할을 줄 수 있는지를 봐요. 처음에는 이 선발 기준이 모호해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장학생들이 잘 선발되고 있어요(웃음).

― 장학재단은 안 만드세요.

▷ 당장 재단 형태로 하지 않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죠. 재단을 만들면 고정 자산이 묶이고 이자 수익으로밖에 기부를 못하기에 지원 규모가 작아져요. 지금처럼 저금리 상황에선 100억원 규모의 재단이라면 1년에 2억원도 지원하기 어려워요. 재단 형태는 규제나 제약도 심해요. 제가 가진 선발기준으로 장학생을 선발하려면 현재 재단 형태로는 어려움이 있어요. 물론 종래에는 장학재단이나 사학재단 등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재단을 만들면 이사장으로는 존경하는 교수님을 모시고 저는 허드렛일이나 맡아 할 생각이에요.

박철상 씨가 1시간30분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박씨는 평생 동안 자산 대부분을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했다.
― 기부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요.

▷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기부에 관심이 없었죠. 대입 무렵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원하던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당시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군에 가서 제가 살아온 20년 시간을 되짚어보니 큰 착각 속에 빠져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성품 따뜻한 부모님, 건강한 몸, 여유 있는 환경과 조건, 모두 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타고난 행운들인 거죠. 어쨌든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많은 제약 속에서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 역시 무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경제적인 능력이 생기게 되자 그분들을 살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공군 병장으로 전역했는데 군대가 저를 철들게 한 거 같아요(웃음).

― 어떻게 주식 투자를 하게 된 거죠.

▷ 아버지께서는 왜곡된 투자 환경에 노출될까봐 중학교 3학년 때 생일선물로 증권계좌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렇게 주식 투자를 접하게 되었고 실제 자금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죠.

― 아버지께서 금융업에 종사하시는지.

▷ 아버님은 공대 출신이신데 그런 분야와는 전혀 무관하세요. 어머니도 그저 평범한 주부이십니다. 주식 투자는 독학했어요(웃음).

― 성공 투자의 비결은 뭔가요.

▷ 주식을 하기 전만 해도 주식은 경제·경영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죠. 경제 정책 자체가 정치적인 이해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거잖아요. 정치나 국제관계, 심리 등 모든 게 맞물려 돌아가는 게 주식시장이더라고요. 평소에도 책을 좋아해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서적을 많이 봤는데 주식 투자를 한 이후로는 독서 스펙트럼을 완전히 넓혔어요. 다양한 서적을 봐 왔던 게 어느 순간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대학에 입학한 후로 한 해 100권 이상 읽었고, 2009년부터는 130~150권으로 늘렸어요.

― 수익률이 가장 좋았을 때는 언제였나요.

▷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직후였고 다음으로는 남부 유럽 재정위기 직후에 수익률이 높았죠. 경제 위기가 오게 되면 공포에 의한 과매도로 폭락이 발생하지만, 경기가 회복되면서 정상 가격을 빠르게 찾아가는 시점을 적절하게 이용한 거죠. 회복의 탄력성이 높은 업종과 종목에 집중 투자하면서 평상시엔 상상하기 힘든 성과를 거뒀어요.

― 성공 투자의 팁이라도 좀 가르쳐주세요.

▷ 세상에 투자 비법이니 비결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설명할 수도 없고 알려준다고 해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나름의 투자방법을 정립하는 데에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해준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전재산이 얼마냐구요? 평생 기부할 만큼 아닐까요"

"청년 기부왕" 박철상 씨가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씨는 그동안 수많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해 왔다. [이승환 기자]
― 그럼 주식 투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요.

▷ 선문답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항상 염두에 둔 게 겸손함이었어요. 주식시장은 수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곳이잖아요. 여기에 대응하려면 끊임없는 공부와 분석, 노력이 수반돼야 해요.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이거든요. '욕심이 없어야 뜻을 바로 세울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해야 그 뜻이 멀리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즉, 담박명지는 절제, 영정치원은 평정심을 의미해요. 결국 이런 부분에서 투자의 성패가 갈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젊은 자산가로 오해의 시선도 많았죠.

▷ 처음에는 정말 억울했죠. 자는 시간 줄여가면서 어렵게 번 돈인데 오해를 받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까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건 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신인 거죠. 저를 오해하시는 분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와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걸 자각하고 나서는 다음 세대까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동력으로 삼고 있어요(웃음).

― 더 이상 주식 투자는 안 할 것인지.

▷ 2년 전에 주식 투자를 중단했어요. 제가 평생 지원사업을 하는 데 계획했던 금액이 있었고 그것이 재작년에 채워졌기 때문이죠. 지금은 기부 자체보다 지원이 필요한 분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 학생들에게 투자 공부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 저는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모의투자를 꼭 시작하라고 해요. 모의투자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실제 자금으로 운용하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요.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가지면서 나름의 투자방법을 정립했어요. 처음부터 실전 투자를 하게 되면 돈을 벌고 잃는 데만 생각이 매몰돼 제대로 된 투자법을 정립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대학교 4년, 취업 후 2년 정도 해서 6년간의 모의투자를 통해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보라고 하죠. 그 정도 기간이면 경기 순환의 한 작은 사이클을 거치거든요. 시기마다 자신이 어떤 수익률을 올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죠. 만약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보였다면 종잣돈으로 조금씩 실전 투자를 해 보라고 권해요.

― 부모들의 역할은 없는지.

▷ 자녀들에게 모든 사회 현상은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을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경제 현상 역시 마찬가지죠. 경제 교육을 위해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양서를 탐독하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신문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해요. 가급적이면 활자 신문 보기를 추천해요. 경제신문도 꼭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식견을 기르게 되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안목이 생길 수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 지원 사업을 좀 더 확대하고 다져놓은 다음에 3~4년 후쯤 유학을 갈 생각이에요. 유학 후 돌아와서도 아마 평생 동안 학생들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쓸 계획이죠. 저는 개인적인 목적이나 욕심 없이도 순수하게 남을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제 평생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주려고 해요. 그들에게 학교에서, 또 책에서 배우는 이상과 가치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어요.

― 끝으로 박철상 씨에게 기부란.

▷ 부에는 개인적인 부와 사회적인 부가 있다고 봐요. 개인적 부는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소유한 이가 세상을 떠나면 소멸해버린다고 봐요. 반면 사회적인 부나 가치는 세대를 거듭해서 이어진다고 믿어요. 그런 점에서 저에게 기부란 이런 사회적 가치를 키워나가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인 거죠. 저는 자식에게 물질적인 부를 물려주는 것보단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봐요.

박씨는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짓이 '돈 자랑'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자산이 얼마인지는 비밀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가 평생 얼마를 기부하는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100억원은 넘느냐고 물어보니 그 금액은 넘는다고 답했다.

주식 투자와 관련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요즘에는 장학기금 운영과 강연을 다니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인기 강사답게 몸값이 비쌀 것 같지만 그는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교통비 역시 본인이 부담한다. 한 달에 교통비로만 100만원 이상 쓴 적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강연도 재능 기부라는 이유에서다.

박철상 씨는…

198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울산 염포초등학교, 울산 양정중학교, 울산 우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장학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졸업이 늦었다.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상당한 자산가가 됐다. 2015년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올해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선정됐다. 2년 전부터 주식 투자를 끝내고 현재 장학기금 운영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경영일반] 난 국민이라는 본업에 충실···통합 말하는 정치권, ‘국민과의 연정’ 나서야

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광장에서 나온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행해야 할 정책목록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금이라도 애들 데리고 집에 가야죠. ‘밥 한 끼 먹이고 엄마 손잡고 집에 가자. 용서해주고 허락해주면 우리도 앞에 서고, 뒤에 서고, 옆에 서서 (아이들이) 엄마 손 놓지 않게 해줘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가 1074일만에 맹골수도를 떠나기 시작한 24일, 김제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고, 말이 가끔씩 끊겨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잘 있다가도 막 북받쳐 터져나와요. 여행도 다니고 밥도 먹고 하다가 문득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었어요. 근데 부모님들은 항상 그러실 거 아니에요. 이제 끝까지 밝혀야죠. 밝히는 게 치유의 시작이거든요.” 

팽목항, 청와대 앞,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했던 김제동은 다음달 16일 사고 3주기에는 정부가 제대로 예를 갖춘 추도식을 열면 좋겠다고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사람들 이름도 불러주고 의장대가 예도 갖춰주고 하면서 우리 마음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3주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우리가 사과하고 기억하면서 우리 마음속의 상처들, 무의식에 배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지 열흘 뒤인 지난 20일 김제동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 한달 평균 5000명, 많게는 2만명을 웃기고 울리며 마음을 읽어왔고, 지난 몇달의 탄핵현장에서 그 몇배의 시민을 만나왔다. 김제동은 쉽지만 분명한 언어로 국민이 권력자임을 일깨우고 자존감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모아진 시민의 힘이 탄핵을 이끌어갔다.


김제동은 광장의 외침이 멈추고 시민들의 ‘마이크’도 사라진 지금, 정치권의 상황이 그리 미더워 보이지는 않는 듯 했다. ‘전두환 표창’ 논란 등 ‘이전투구’ 양상의 선거전과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 일부 캠프참여 인사들을 보면 정치권이 시민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낼지 의문스러워 했다. “이래서는 시민들이 다시 뒷방으로 떠밀려난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사는 게 과연 나아지기는 할까’라는 허탈감이 들 것도 같아요.” 

그래서 김제동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행해야 할 정책목록을 시민들이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목록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건 최저시급 1만원을 시행하고, 남북문제 주도권을 우리 정부와 국민이 쥐도록 노력하고, 시민들이 국정에 상시 참여하는 방안 등이 담길 수 있다. “사드는 미국이 하라고 해도 국익에 맞지 않으면 배치하지 말아야 하고, 국익에 맞다면 중국이 반대해도 배치할 수 있어야 해요.” 김제동은 최근 청년정당 ‘우리미래’의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런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광장에서 헌법의 가치를 설파해온 ‘헌법전도사’답게 김제동은 3시간 반의 인터뷰 도중 헌법 조문을 줄줄 뀄다. 헌재의 파면결정에 대해 “국민이 국가운영의 주체임을 명확히 한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헌법을 읽어보면 우리 국민이 보통‘갑’도 아닌 ‘수퍼갑’인 걸 알게 돼요. 헌재의 결정문은 어떤 문학작품 못지 않게 아름다워요.” 

 

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에요. 우릴 행복하게, 함께 웃게 해줄 수단이죠.

■아이들 보면 ‘잘됐으면 좋겠다’ 싶다 

김제동이 지난해 10월 출간한 <그럴 때 있으시죠>는 20만부 가까이 팔렸다. 출판 불황시대에 드문 일이다. 읽어보니 “재미있어 웃게 되지만, 웃으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리고 찡해온다”는 추천사(이해인 수녀)가 과히 틀리지 않는다. 

- <그럴 때 있으시죠>를 보면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 ‘따로 약속을 안 잡아도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독서다. ‘휴(休)’ 한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 쉬는 형상인데 책에 기대는 것도 좋은 휴식이다. 요즘엔 신간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읽고 있다. 내 마음이 이럴 때 이런 시가 좋다고 안내한다.” 

- 발언에 디테일이 느껴진다.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구조도 잘 알고 있더라.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아 (자연히) 최저임금도 살펴보게 됐다. 삶의 많은 걸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인데도 위원회 구조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저임금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헌법 32조에 규정돼 있다. 각 정당이 시기 차이는 있지만 최저시급 1만원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정은 위원회에 맡겨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최저임금을 국회에서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최저시급 1만원과 현재 최저시급(6470원)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 주자고 제안했다.

“중소기업 취업청년에게 정부가 임금을 일부 보전해 주고 있는 걸 확대하자는 거다. 시급 6470원을 받은 노동자들이 임금명세서를 제출하고 정부가 시간당 3000원가량을 보전해주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부담은 늘지 않으면서 청년들 주머니 사정은 조금 나아질 거다. 어른들이 매달 20대 청년에게 50만원가량 준다는 통계가 있는데 청년소득이 높아지면 노인세대에게도 도움이 된다.”

-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아르바이트 두 탕 뛰는 동네 청년과 함께 담배를 피우다 ‘최저시급이 1만원이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보니 ‘그러면 행복하죠!’라더라.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렇게 되면 좋긴 한데 자영업자는 더 나빠지지 않을까. 한쪽만 좋으면 안되고 서로 좋아야 행복이지 않나’ 고민하다 그런 정부정책이 있는 걸 알게 됐다.”

김제동은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대우’에도 주목한다. “정주영 회장 어록 옆에 ‘나는 넥타이 정장보다 아빠 작업복이 좋아’ 같은 어록을 걸어두면 노동자들이 일하러 가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직업도 인정과 지지를 받으면 공무원이나 판검사 되려고 경쟁하는 시스템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 아이들이 돈 걱정 안 하고 문화예술 분야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시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이 있어야 사는 것 같지 않을까. ‘잉여’ 취급당해온 이들이 잘 먹고살고, 심리적 대우도 받아야 한다.”

- 방송녹화나 강연 과정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쭉 듣는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어야 억울함이 덜어진다. 그래서 교회나 절에 가는 거 아니냐. 하나님, 부처님은 내 말을 끊지 않으니.(웃음)”

- 청년정당 ‘우리미래’의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데, 활동의 무게중심이 청년에 가 있는 듯하다. 왜 청년이 중요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쓸모의 가치’로 보자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기 웃음소리가 끊긴 동네를 생각해봐라. 삭막하다. 옆집 아이가 무사히 군대 제대하고 와야 그 집 가서 막걸리도 한잔 먹고 그럴 수 있지 않나. 우리집 애가 잘되면 옆집 사람도 행복하고. 그렇다고 평준화하자는 게 아니고 헌법전문에 있듯 ‘기회는 균등하게 하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거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 해서 공책 세 권 받는 걸 샘낼 수는 없다. 대신 참가상으로 공책 한 권씩 받지 않나. 그게 기본소득이다. 그런 방향으로 공동체의 재설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김제동은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에서 아이들 보면 ‘잘됐으면 좋겠다’ 싶다. 초등학생이 무거운 가방 멘 거 보면 가방 안에서 책 좀 덜어내 주고 싶다. 어떤 아이를 만났더니 ‘학교에서 춤수업 평가를 한다’더라. 평가 없이 그냥 춤추면 안되나. 이런 게 교육개혁 아닐까.”

 

■우리 국민, 역사상 가장 통합돼 있다 

김제동은 권력구조를 ‘권한구조’로 바꿔 말한다. 우리 헌법상 ‘권력’은 국민에게만 부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연필심 다듬듯’ 생각들을 벼려온 흔적이 엿보인다.

- 지난겨울이 굉장히 길었다. 

“서울,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열몇곳을 다녔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장엄하게 느껴졌다.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는데도 광장에서 몇 시간씩 앉아 견디는 건 ‘옆집 애들 잘됐으면 좋겠다’ ‘애들 세상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을 거다. 정치권이 통합을 말하는데 우리는 통합당하려고 이 땅에 온 게 아니다. 저마다 의견을 말하고, 주체로 서있는 거다. 나중에 가면 사람들이 통합이 아니라 의견을 조율해내기 시작한다.” 

- 시민들이 스스로 통합을 이뤄낸다는 뜻인가. 

“촛불혁명은 국민이 정치권을 통합시켜낸 거다. 정치권이 탄핵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할 때 통합시켜낸 게 국민들이다. 대구 동성로에 만민공동회 하러 갔더니 비가 와서 사람이 100명쯤 모여 있더라. 춥기도 했고 바닥이 젖어 앉을 수도 없었다. 근데 막상 시작하니 어디선지 모르게 사람들이 확 몰려나오더라. 찻집, 술집에 있다가 사람이 적으면 안될 것 같으니 나왔을 거다. ‘촛불동력 끊어졌다’는 말 들을까봐. 그렇게 국민들이 동력을 유지해줘 성공한 거다. 지금처럼 국민이 통합된 때는 역사상 찾기 힘들다.”

-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누구 덕인데’ 하고 야속해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끌어안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거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온 일부 주도세력들은 처벌 받아야 한다. 협박이나 폭력행사는 체제전복 세력이자 반헌법 세력이다.”

-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어떻게 봤나. 

“결정문에서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라는 대목이 가장 와 닿더라. (권력의) 주체가 국민임을 명확히 한 거다.” 

- 정치인들은 ‘광장의 정치를 끝내자’고 한다.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건 아니지만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참여의 언로가 개방돼 있다. 최순실은 믿으면서 왜 국민은 믿지 못할까. 최순실과 상의하는 정도로 국민과 상의해야 하고 그게 정책결정의 투명성이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국민과 연정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박근혜 정권에서) 할 만큼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 

- ‘국민과의 연정’론은 추상적으로 비칠 수 있다. 

“맞다. 추상적일 수 있다. 우리 헌법도 아름답고 명료하지만 어찌보면 추상적이다. 그러나 추상에서 실상을 가져와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 같은 헌법상 권리들을 행정부가 법과 시행령으로 뒤집어 왔다. 그러면 안된다는 게 헌재 결정문의 요체다. 국민도 100만명 이상 서명하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50만명이 발안하면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명 받기 쉽지 않겠지만 만들어놔야 정치인들이 국민을 겁낸다. 입법·사법·행정 전 분야에 국민이 상시 참여하는 체계가 ‘국민과의 연정’이다. 개헌 논의에 이런 게 다뤄져야 한다.” 

- 현재 개헌 논의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권한구조만 논의할 뿐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나중에 국민투표를 거치니 결국 국민이 결정권 가진 거라고 하지만, 그 말은 예산심의확정권을 국회가 갖고 있으니 국회가 예산권을 가졌단 말과 똑같다. (예산은) 사실 행정부가 다 짜지 않나.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또 헌법개정 과정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 요즘 대선주자들의 언행이나 캠프 참여 인사들을 보면 시민의 열망과 에너지를 제대로 담아낼지 의문이다. 

“이번 혁명의 결과물은 뭘까. 내가 사는 게 나아지기는 할까, 그냥 분풀이 아니었을까라는 허탈감도, 잠깐 주인이 됐다가 떠밀려난 느낌도 들 수 있다. 지금 각 정당이나 캠프에 있는 분중 일부는 개혁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과거 정치권에서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들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시민들이 마이크를 뺏긴 느낌 같은 건가. 

“그런 느낌이다. 후보들이 미덥지 못하면 누가 당선되든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공약목록을 만들 필요가 있다. 최저시급 1만원은 반드시 시행하도록 약속을 받아내자. 남북 문제도 제재할지, 대화할지의 주도권이 최소한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계속 공론화하고 펼쳐가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목록을 만들 건가’라는 문제가 있다. 촛불집회 초기에 온라인 시민의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성 논란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1987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광장의 뜻을 모아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공약목록은) 참여연대나 경실련, 혹은 다른 단체가 만들 수도 있다. 뒷방으로 밀려나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가 ‘우리미래’를 지원하는 것은 청년들이 쥔 마이크의 볼륨을 높여주고 싶은 거다.” 


 

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웃는 게 목적이고 민주주의는 그 수단 

김제동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노제 사회를 계기로 ‘미운털’이 박혔다. 2012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사찰 대상자 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낮고 약한 곳을 찾아 다녔다. “어머니가 ‘너는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옆집 누구 엄마 젖 먹고 자랐으니 은혜 갚아야 한다’고 늘 말하곤 했다. ‘사람들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많았다.” 

- 김제동씨에 대한 수식어는 개그맨과 방송인으로 갈린다. 

“부르는 사람들 마음인데 나는 ‘사회자’로 불리는 게 좋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여기저기 배달하는 게 일이다. 나더러 ‘본업에 충실하라’고 하는데 국민이라는 본업에 충실한 거다. 사람을 한 가지 직업으로 규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대통령이 개그맨도, 성직자도 될 수 있다. 돌도 대신 맞아주고, 머리카락도 좀 뜯기고.”

- ‘내 역할은 사람들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앰프’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던데 그거야말로 정치의 본령 아닌가. 계기가 궁금하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노 전 대통령 노제 사회가 결정적 계기였던 거 같다. 연락이 왔을 때 ‘유족 의사인가’ 물으니 그렇다길래 ‘그럼 간다’고 한거다. 사람이 돌아가시면 대곡(代哭)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후) 힘들었지만, 결정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 팽목항에도 가고, 쌍용차 노동자들도 만났다. 그걸 정치로 보는 이들이 있다.

“정치라고 보는 거에 일부 동의한다. 어머니가 과부였고, 첫째 매형이 조선소에서 일하다 돌아가셨고 집이 철거되기도 하고, 그렇게 자랐다. 야구장·놀이공원에서 사회 보다 서울에 올라와 운 좋게 혜택을 받았다. 나만 운 좋게 사는 것 같은 미안함이 컸다. 정의롭고 싶었고, 마음이 분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그게 좀 더 편했다.” 

- 웃음에 대한 철학이 있나. 

“토크콘서트나 만민공동회를 하다보면 ‘이런 게 천국 아닐까’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비난도, 말을 끊지도 않고, 별거 아닌데 웃는다. 웃음은 한 사람의 존재에 오롯이 집중해야 나온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웃도록 하는 수단이다. 함께 행복한 거, 그게 웃음이다.”

- 대중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장벽이 아직도 높지 않나.

“그쪽 경력이 이제 10년쯤 되는데 지금은 많아져서 좋다. 본업에 충실하라고 하는데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지 봐야 한다. 우리 국민 취미가 국난극복 아닌가.(웃음)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한다해도, 국민의 본업은 공동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거다. 그게 얼마나 재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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