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 사고

일상/역사이야기|2018. 2. 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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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연휴기간동안 부모님과 조카들을 데리고 "전주한옥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몇 차례나 방문한 곳이였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없겠다 싶었는데 역사에 조금 관심을 가지고 나서 본 "경기전"은 새로운 느낌이였습니다. 태조이성계의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텍스트"를 읽어 가니 당시의 상황, 사람들의 생각, 가치가 어땠었는지 대충이나마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였습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에는 조선왕조가 건국을 기념해 경기전을 건립하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습니다우리가 일기를 쓰듯이 매일 왕에 대한 보고사항과 왕의 명령 사항, 각 관청에서 취급한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을 실록이라 합니다.

기록의 자세함에 있어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기록이라 하여 큰 자부심이 된 실록을 보관했던 장소 중 한 곳인 사고가 전주 경기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경기전 동편에 건립된 실록각,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은 1392년부터 1863년 철종까지 472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임금들의 실록입니다. 조선왕조는 실록을 편찬하여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에 4대 사고를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전주사고는 1439년 외사고의 설치가 결정되었으나, 1445년 실록 봉안이 이루어질 당시까지 전주에 사고가 건립되지 않았답니다.

전주사고에 보관하기 위해 내려보낸 [태조실록]~[태종실록]은 전주 성내의 승의사에 안치되었습니다. 이후 실록은 1472년 경기전 동편에 실록각을 건립하였습니다. 이후 실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각 왕대의 실록이 순차적으로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924월 27일에 성주, 4월 28일 청주, 5월 2일에 서울이 함락됨에 따라 세 곳의 실록은 불타버렸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뿐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그해 6월 전주에도 왜군이 들이닥쳐 전주사고마저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당시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8백여 권과 고려사 등 귀한 책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사고는 불타 없어졌지만,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의 어진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151호로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4대
지방 사고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찬한 것은 1409년(태종 9)부터 1413년(태종 13)까지 4년간의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이 처음입니다. 1426년(세종 8)에 정종실록 6권을 편찬하고 1431(세종 13)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 정종. 태종의 3조 실록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과 1부는 충주 사고에 봉안했다 합니다.

그러나 2부는 실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매우 걱정되므로 1445년(세종 27)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분장하였는데 이것이 전주사고의 시초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실록 전체가 화를 당하자 실록을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후에 적상산으로 이동), 오대산의 산간지역에 4개 지방 사고를 짓고 실록을 보관해 왔답니다.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낸
손홍록과 안의의 충절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태인이라는 고장의 이름 없는 유생 안의와 손홍록 두 사람 덕분입니다. 왜군이 들이닥친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집안의 머슴들을 이끌고 전주까지 달려와 전주사고의 참봉 유신, 오희길 등과 함께 실록을 정읍까지 피신시켰답니다. 64 궤짝이나 되는 실록을 말 등에 싣고 내장산 은봉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숨겨놓았다고 했습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의 어진을 지키기 위해 교대로 밤잠을 자지 않으며 수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손홍록은 56, 안의의 나이가 64세였다면서 두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지켜낸 실록은 선조 36년 다시 네 벌로 등사돼 사고에 봉안되었답니다. 관리도 아니고 중앙부서의 책임자도 아닌 이름 없는 지방 유생의 자발적인 헌신과 충절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유산을 후손에게 남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록각의
내부 모습

왕이 승하한 후에 실록은 만들어졌는데 사관들이 시정기, 사초, 승정원일기 같은 기록들을 모으는 일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자료를 기초로 초초를 작성, 이를 검토해 중초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인쇄 대본이 되는 정초를 완성합니다. 실록이 완성되면 실록편찬에 사용된 모든 자료는 기밀 방지를 위해 세초 하였답니다.

사고 안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눈으로 보여주듯 그림과 모형이 있어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기록물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내부는 자그마했지만,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니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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