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난민의 삶을 이대로 방관해도 괜찮은가?

일상/글로벌이야기|2017. 12. 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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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지난달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외곽 노예 경매 시장에서 6~7분 사이에 10여 명이 팔려나가는 현장을 포착했습니다. 
"땅 파헤칠 사람은 필요 없어요? 여기 크고 강한 사내가 있습니다"
 
군복 입은 경매인이 말하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값을 불렀고, 몇 분 만에 거래는 끝났습니다.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돈을 받고 유럽으로 보내던 중개상들이 난민선의 유럽 입국이 점차 어려워지자 일꾼으로 팔아넘기고 있는 거였죠. 유러피안 드림이 산산이 깨지는 현장이었습니다.
 
현대판 노예시장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7일(현지시간) "리비아의 노예 매매는 반인륜 범죄에 해당하는 극악무도한 인권 침해"라며 규탄하는 공식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도 리비아에 억류된 자국민을 본국에 송환하겠다고 밝혔죠.  [출처: 중앙일보] [알쓸신세] "사내 필요한 분?" 경매로 45만원에 팔린 난민


 

다른 나라 이야기라 "아직도 노예거래를 하는 국가도 있네"정도로 이 내용을 바라본다면 안타깝다. 우리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란 이유로 그저 정보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인권"에 대한 성숙도가 한참 모자라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의 모든 이슈를 관심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슈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수많은 이슈에 관심을 가진다면 어쩌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권의 의미가 어떤 것이고 어떤 역사를 통해 발전해왔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받았을 경우 국제적으로 인권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져야 이슈가 되고 해결될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이 될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아프리카 난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중국이나 러시아로 이주한 역사가 있다. 우리역시 난민이였던 시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힘들었을때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어 조금의 힘이라도 줬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가지게 된 현재 우리도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보자. 모든 행동은 결국 관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를 의미한다. 조금 쉽게 말하면 전쟁이나 어떤 위협으로 인해서 자신의 나라에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대피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난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추억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것도 슬픈일일진데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어려움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난민의 역사

박해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에게 해외에서 비호를 제공하는 관행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특징 중의 하나이다.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 등 중동의 초기 거대제국이 번성하던 시절인 3500년 전 기록문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난민이 발생한 사례를 보면 러시아혁명 기간에 약 150만의 난민이 러시아를 떠났고, 1934년 독일에 나치정권이 수립되자 반체제 인사들과 유대인을 비롯한 나치의 피해자 약 250만의 난민이 독일을 등지고 각지로 흩어졌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1947년 인도의 분열과 팔레스타인 분열, 1948년의 팔레스타인 전쟁, 1975년의 캄보디아와 라오스 및 베트남 등지에서 ‘보트 피플’로 유출된 인도차이나 난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8년부터 시작된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 때에는 78만에 달하는 주민이 학살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다. 

아프리카 난민 발생의 원인은?

<현상적 원인>

유럽으로 향하는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시발점은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생한 이른바 ‘아랍의 봄’ 혁명이다. 독재 정권을 타도하자는 시민들의 함성은 북아프리카 국가인 리비아, 이집트 등을 거쳐 중동의 시리아와 예멘 등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시리아를 뒤덮은 민주화 시위는 탱크를 앞세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무산됐다. 이후 반정부 세력은 무장 반군으로 바뀌었고 시리아는 내전에 돌입했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에 민주국가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정권을 붕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아사드 정권은 건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틈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시리아 동북부 지역을 점령했다. 아사드 정권은 내전 과정에서 민간인을 무려 28만 명 이상 학살했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여기에 독재 정권에 시달리거나 내전, 가난에 내몰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등의 시민들도 무작정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경관리청(Frontex)에 따르면 지난해 발칸 반도와 아프리카 북부 등을 거쳐 유럽에 들어간 난민은 182만7260명에 이른다. 2014년 28만7947명의 여섯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국경관리청은 유럽 유입 난민 이동 경로를 지중해 동부, 발칸 반도 서부, 지중해 중부 등 크게 8개로 파악하고 있다. 

<본질적 원인>

“나토 국민들아! 너희는 장벽에 폭격을 퍼붓고 있다. 아프리카인이 유럽으로 이주할 길을 막고,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를 막고 있는 그 장벽에 말이다. 그 벽은 리비아다. 너희 바보들이 그 벽을 허물고 있다. 너희는 아프리카에서 밀려올 수많은 이민자들로 지옥의 불을 맛볼 것이다. 바로 너희가 알카에다를 지원한 것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하마드 카다피가 미국과 서구의 축출작전으로 피살되기 전 서구를 향해 남긴, 저주에 가까운 예언이다.

난민과 테러, 두 난제의 근원을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자본주의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이 난민과 테러의 씨앗을 뿌렸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이러한 재앙의 기본바탕에는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계급투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기득권 집단에만 봉사하는 정부로는 두 난제의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동력과 군사개입 과장에서 난민발생의 원인을 찾을 수있다. 이 시대의 민낯인 ‘신세계질서’의 지속적 혼란이 난민발생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사례를 들면 콩고의 참상을 참고 할 수 있다. “2001년 유엔이 콩고 천연자원의 불법개발 문제를 조사했고, 그 결과 5개 주요광물(콜탄, 코발트, 구리, 금, 다아몬드)의 소유, 통제, 거래 문제에서 (참상이) 발생된 것임을 확인했다. 부족 간 분쟁으로 치장된 싸움의 배후에 글로벌 자본주의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젝은 진정으로 아프리카인을 돕고 난민발생을 막고자 한다면 바로 자본주의의 개입부터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현장의 자본주의 작동방식은 노예 양산일 뿐이다.” 예컨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에서 일하는 수백만명의 이민노동자는 사실상 기본시민권과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런 신노예제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남미, 미국 등 세계 도처에서 온갖 형태로 진화중이다. 이곳에서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사실상 강제수용소와 다름없다. 새로운 아파르헤이트, 사실상의 노예제의 체계적 확산은 참사가 아닌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필연성의 결과다. 

특히 대다수 난민이 실패한 국가, 즉 공권력이 무너진 국가(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콩고, 에리트레아…)에서 발생한 현상에 주목해야한다. 이들 국가의 공권력 붕괴는 대부분 미국 또는 서구의 직접적인 개입의 결과다. 예상 밖의 불행이 아니라 강대국에 의해 강행된 경제식민주의가 초래한 것이다. 이슬람테러의 선봉에 선 수니파 IS의 발호 이유에 대한 분석을 들어보자. “강대국의 경제식민주의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수니파가 재결합한 IS가 결집되는 호기를 만들어주었다. IS는 옛 식민지 지배국들이 갈라놓은 수니파가 재결합한 결과이다.”

정리하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사람들이 남긴 잔반을 처리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리는 고사하고 운반만으로도 버거워 보이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비분강개를 금치 못하기엔 나도 그리 떳떳한 입장은 아니었다. 단지 입맛이 맞지 않아서 적지 않은 양의 잔반을 버리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인간의 모든 서러움 중에서 가장 사무치는 것이 바로 굶주림에 대한 서러움이라고 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대한 서러움과 공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정은 다르다.

2006년 10월,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꼴로 굶어 죽었으며, 3분에 1명이 비타민 A의 부족으로 시력을 잃었다. 거기에 8억 5000만 명, 지구촌 인구 7명 중 1명이 만성적 영양실조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열악하다. 전체 인구의 36%가 굶주림이 일상화 되었다고 한다. 먼 나라의 상황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의 처지 역시 절망적이다.

갑자기 아프리카 난민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굶주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헷갈릴 것이다. 오늘 글을 정리하며 굶주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스럽고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들과 관련하여 지구반대편의 사람들도 동일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의미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식사,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국가, 내가 지금 편하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투쟁으로 쟁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절반은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식사량을 줄이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어느 국가의 국민들은 조국을 떠나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로 귀환해야 하며,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굶주림과 전쟁, 난민의 삶에 대한 공포를 모르는 나는 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캐롤이 나오며 따뜻한 난방이 되고 있는 카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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