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일상/다양한이야기|2017. 3. 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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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루키마인드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뜻깊은 하루를 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에 반성하는 의미에서 삼일절에 대한 리뷰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려 합니다.

3.1절의 의미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3·1운동을 기하여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내외에 선언한 글.

독립운동이 계획된 당초에는 건의서 형식으로 일본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기로 발의되었으나, 건의서는 민족자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강력한 독립의 의지와 그 당위성을 내외에 선포할 독립선언서로 해야 한다는 최린()의 주장에 따라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해 2월 초, 최린·송진우()·현상윤()·최남선() 등은 협의를 했고, 선언서의 초안은 최남선이 작성하였다.

손병희()는 독립선언서 작성의 대원칙을 세웠는데, 이는  ①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을 것, ②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③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정신을 바탕으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한다는 등이다.

최남선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광문회() 임규()의 일본인 부인의 안방에서 약 3주일 만에 이를 작성하여 최린에게 전달하였고, 최린은 손병희 등의 동의를 얻어 2월 27일까지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을 끝마쳤다. 선언서 뒷부분에 첨가된 공약 삼장()은 한용운()이 따로 작성한 것으로 전한다. 선언서의 원고는 오세창()에 의해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인쇄소 사장 이종일()에게 넘겨져 2월 27일 오후 6시경부터 10시까지 2만 1000장을 인쇄하였다. 인쇄된 선언서는 경운동()에 있는 천도교당으로 옮겨지고 28일 아침부터 전국의 배포 담당자에게 전달되어,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일제히 선포 및 배포 되었다.

한편, 민족대표들은 3월 1일 아침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장을 탁상에 펴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열람하게 하였으며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한용운이 일어나 이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다. 이날 같은 시각인 오후 2시 탑동(파고다) 공원에서는 각급 학교 학생 ·시민 약 5,000명이 모여 정재용()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3·1독립선언서 원문 일부]

[원문] 임과 임을 하노라.
로써 하야 하며, 로써 하야 케 하노라.(중략)

[뜻]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 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원문], 하야 에 처음으로 한지 한지라. 됨이 무릇 며, 됨이 무릇 ㅣ며,   됨이 무릇 ㅣ 며, 으로써 함이 무릇 ㅣ뇨. (중략)

[뜻]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 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년만에 처음으로 딴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지 이미 10년을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원문] 하도다. 하며 하는도다.
업시 로서 하야 으로 더부러 하게 되도다.
하며 하나니,가 곳 이라.
다만, 으로할 따름인뎌. (후략)

[뜻]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네이버 지식백과] 3·1독립선언서 [三一獨立宣言書] (두산백과)

태극기의 내력과 담긴 뜻

태극기의 내력 세계 각국이 국기(國旗)를 제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국가가 발전하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조인식 때 게양된 국기의 형태에 대해서는 현재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2004년 발굴된 자료인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제작한 ‘해상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실려 있는 이른바 ‘Ensign’기가 조인식 때 사용된 태극기(太極旗)의 원형이라는 주장이 있다.

1882년 박영효(朴泳孝)가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特命全權大臣) 겸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사화기략(使和記略)」에 의하면 그해 9월 박영효(朴泳孝)는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를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그 달 25일부터 사용하였으며,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은 다음 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으나,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탓에 이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되어 오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42년 6월 29일 국기 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국기 통일 양식」(國旗統一樣式)을 제정·공포하였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1949년 1월 「국기 시정위원회」(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하여 그 해 10월 15일에 「국기 제작법 고시」를 확정·발표하였다.

이후, 국기에 관한 여러 가지 규정들을 제정·시행하여 오다가, 2007년 1월 「대한민국 국기법」을 제정하였고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2007. 7월)과 「국기의 게양·관리 및 선양에 관한 규정」(국무총리훈령, 2009. 9월)도 제정함에 따라 국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태극기에 담긴 뜻 우리나라 국기(國旗)인 '태극기'(太極旗)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 : 음 --, 양 ―)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가운데 건괘(乾卦)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坤卦)는 땅을, 감괘(坎卦)는 물을, 이괘(離卦)는 불을 상징한다.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韓民族)의 이상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태극기에 담긴 이러한 정신과 뜻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이룩하고, 인류의 행복과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3.1절을 맞아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선조들의 독립을 향한 의지와 노력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선언한 날에 정말 이러지 맙시다. 기본이 있어야 나라고, 책임을 지는 것이 역사에 대해 사죄할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태어나 언젠가는 죽겠지만, 우리가 선택하고 취했던 행동들은 미래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 질 것입니다. 우리 선조가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합시다. 이사람들아..

"장기적인 한일 관계에도 도움 안돼…밀실합의 의혹"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야권은 1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위안부합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발언한데 대해 "가장 치욕스러운 기념사"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황 대행 경축사(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17.3.1
srbaek@yna.co.kr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황 권한대행 눈에는 일제 치하에서 우리 소녀들에게 자행된 끔찍하고도 심각한 인권침해는 정녕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삼일절 기념사인지 한일수교 기념사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황 권한대행의 3·1절 기념사는 가장 치욕스러운 기념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국민의당 김경진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황 권한대행이 합의 정신을 존중하자는 발언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의미에서 한일 친선·우호관계에도 도움이 안 될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황 대행의 언동은 위안부합의 밀실합의에 대한 더욱 강한 의혹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또 황 권한대행이 최근 북한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면서 "만약 조기대선 국면이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을 희석하려고 연설에서 북한 관련 부분을 강하게 연설에서 언급한 것이라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상임대표는 심 대표는 이날 낮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황 권한대행의 위안부합의 관련 발언에 "참으로 친일매국정권다운 망발이 아닐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는 "좀 전에 행사장에 다녀왔는데, 할머니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기도 송구스럽다. 단상을 들어 엎고 싶은 심정이었다"면서 "정권교체를 하면 최우선적으로 이 굴욕적이고 반역사적인 위안부협상의 진상을 밝히는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 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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